‘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자동차 산업 강국인 독일은 시장을 주도하면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역할을 지금껏 이어왔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흐름이 디지털과 전기차, 그리고 자율주행 등으로 확장되자 자국 자동차 업계가 이런 변화를 잘 이겨낼 수 있을지를 놓고 독일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전기차 시장과 관련한 보도가 특히 많았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독일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검증 카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이겨낼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주도권을 잃고 추격하는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교차 중이다. 이런 와중에도 소비자와 언론으로부터 비교적 일관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아우디다.
아우토하우스 같은 매체는 아우디가 Q8 e-트론, e-트론 GT, 그리고 Q4 e-트론으로 초기 라인업을 구성한 것은 영리했으며, 처음부터 전기차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는 게 효과적인지 잘 알고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프런티어 고급 전기 SUV, Q8 e-트론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1은 2019년 첫 출발한 아우디 순수 전기차가 E세그먼트 SUV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 인기 높은 SUV를 전기차로, 그것도 준대형급 사이즈의 모델로 내놓으며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전기차로 잘 전이시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중 아우디가 가장 먼저 중형 이상의 고급 전기 SUV를 내놓은 사실은 그 자체로 큰 가치를 지닌다고 독일 매체는 봤다. 또한 거울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 살필 수 있는 디지털 사이드미러를 양산 모델에 적용한 점 등도 관심을 아우디 전기차로 끌어오는 효과적 유인 요소였다며 자연스럽게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영리한 결정이었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우디는 e-트론(Q8 e-트론 초기명)을 세분화해 e-트론 기본형과 고성능 모델인 e-트론 S로 나누었고, 여기에 다시 쿠페형인 e-트론 스포트백을 2020년 내놓으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특히 e-트론 스포트백은 아우디 특유의 공간 설계 능력 덕에 2열 공간의 헤드룸 부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이를 통해 스타일과 안락함을 모두 만족시켰다. 이 역시 매우 전략적인 자세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Q8 e-트론으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경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BMW iX(2021년 출시)와 메르세데스 EQE SUV(2023년)가 늦게 출시되었는데, 특히 EQE SUV의 경우 2024년 현재 기준으로 독일에서 신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음에도 Q8 e-트론의 판매량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 확실하게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Q8 e-트론은 독일 프리미엄 전기 SUV의 시작을 알린 모델이자, 아우디의 전기차 색깔과 전략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Q8 e-트론의 뒤를 이을 아우디의 고급 전기 SUV들은 어떤 점을 보완하고 어떤 점을 더 강화할지 알게 됐고, 이러한 소중한 경험을 통해 아우디의 전기차 전략은 더욱 촘촘하고 강력해질 것이라는 게 독일 내 대체적인 평가다.
귀하디 귀한 프리미엄 GT 스포츠 전기 세단, e-트론 GT
2021년 아우디는 e-트론 GT라는 스포츠 전기 세단을 내놓았다. 코로나19가 한창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을 때의 등장이라 판매 등에 우려가 있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출발은 순조로웠고 글로벌 시장은 서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 e-트론 GT는 아직까지도 마땅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쟁 모델이라고 해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나온 형제 모델 포르쉐 타이칸 정도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모델인 것이다.
타이칸은 스포츠 주행에 초점이 맞춰진 전기 스포츠카다. 그에 비하면 e-트론 GT는 말 그대로 장거리 운전 등에 초점을 맞춘 그란투리스모 자동차다. 편안한 운전이 가능한 고성능 스포츠 세단을 의미한다. 데일리카에 어울리는 프리미엄 전기 GT카가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좋은 플랫폼을 통해 나온 뛰어난 스타일과 뛰어난 성능의 전기 GT카라니, 아우디 ‘전략의 승리’(아우토빌트)라 부를 만하다.
e-트론 GT는 독일에서 여전히 한 달에 100대 이상씩 팔리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 머물지 않는 인기임을 의미한다. 독일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이 차와 관련한 오너들 글이 자주 올라온다. “매번 스타일에 만족하고, 성능에 만족한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e-트론 GT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V8 엔진 신봉자이지만 e-트론 GT는 그런 내 마음에 변화를 준 유일한 전기차다”라는 한 이용자의 글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진정한 프리미엄 실용주의, Q4 e-트론
아우디가 Q8 e-트론과 e-트론 GT 등으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다음 전기차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했다. e-트론 GT가 공개된 지 약 두 달 후, 아우디는 준중형 전기 SUV Q4 e-트론을 공개했다. 크고 고급스러운 SUV와 GT 모델이 화려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준중형 전기 SUV가 출현한 것이다.
폭스바겐 ID.4, ID.5, 그리고 스코다 엔야크 등과 같은 MEB 플랫폼을 통해 만들어진 모델로, 타겟층은 분명했다. 크고 화려하고 강한 전기차가 아닌 일상에서 부담 없이, 하지만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콤팩트 전기 SUV를 타고 싶어 하는 보다 많은 소비자층이 그 대상이었다. 젊은 운전자부터 은퇴한 장년층까지, 성별과 연령대 상관없이 누구나 탈 수 있는 전기차다.
그리고 시장은 이런 Q4 e-트론의 지향점에 확실하게 답했다. 등장과 동시에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단번에 인기 모델로 올라섰다. 그리고 독일 판매량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동급 최고다. 유력 매체 중 하나인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의 편집장은 Q4 e-트론이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인다고 언급하며,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Q4 e-트론을 통해 아우디가 전기차 시장의 볼륨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 2024년 1~3분기 준중형 프리미엄 전기 SUV 독일 판매량
(자료: 독일 연방자동차청)
아우디 Q4 e-트론 : 10,417대
BMW iX1 : 8,786대
메르세데스 EQA : 7,823대
Q8 e-트론, e-트론 GT, 그리고 Q4 e-트론은 시장에서 서로 겹치는 지점이 없다. 철저하게 별개의 소비자층을 겨냥했고 모두 성공했다. 실용성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고성능 드라이브를 원하는 운전자의 요구를 모두 받아낸 것이다. 전략의 승리이며, 이 전기차 삼총사 덕에 이후에 나올 아우디 전기차들은 더 많은 소비자와 보다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우디 전기차들은 그들 특유의 감성과 안락함 스타일, 그리고 운전 편의성 등 기존 내연기관 모델들이 가진 특징을 어느 하나 잃지 않은 채 등장했다. 그리고 이는 전기차 시대가 완전히 도래하더라도 아우디가 흔들림 없이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우디엔 정말 고마운 자동차들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