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델은 체계를 둘러보는 재미가 크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성능, 디자인, 장비에 어떤 규칙이 생겨나고 변화를 거치면서 그 모델을 특정하는 체계가 자리 잡힌다. 이 체계는 자동차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 특정 모델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체계를 파악해 브랜드의 전략을 이해하거나 다음 모델을 예측할 수도 있다.
아우디 A6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핵심 모델이다. 1968년에 선보인 아우디 100에서 시작했고, 1994년 100의 4세대 부분 변경 모델부터 A6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현재 모델은 8세대로 2018년에 선보였고, 지난 5월 독일 현지에서 부분 변경 모델이 공개됐다. 차체 형태는 세단과 왜건으로 구분되고, 성능에 따라 일반 모델과 고성능 모델인 S/RS로 나뉜다. 왜건 모델에는 오프로드에 특화한 올로드도 있다. 연료를 기준으로 하면 가솔린,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세분된다. 지금까지 설명은 큰 관점에서 바라본 체계다. 55년 역사를 이어온 모델이어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체계는 굉장히 복잡해진다.
A6의 체계를 알아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싱글프레임 그릴이다. 아우디를 대표하는 디자인 요소인 데다가, 차를 볼 때 눈에 잘 띄는 부분이어서 첫인상을 좌우한다. 싱글프레임 역시 A6의 세대 변화에 따라 체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다. 이번 A6 부분 변경에서 보듯 싱글프레임 그릴 디테일에 변화를 줘서 첫인상 변화를 유도한다. 싱글프레임 그릴은 A6 세대 변화 때마다 분위기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A6의 싱글프레임 그릴은 어떻게 바뀌고 체계를 이뤄왔을까?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6 55년 역사에서 싱글프레임 그릴이 등장한 시기는 비교적 늦은 편이지만, 디자인 정체성 확립에 대전환을 이룬 요소여서 중요도는 매우 크다.
A6에 싱글프레임 그릴은 6세대 모델부터 달려 나왔다. 모양은 육각형인 지금과 달리 사각형이고 등변 사다리꼴을 뒤집은 형태였다. 테두리는 크롬으로 두르고 안쪽은 검은색 격자로 채웠다. 격자를 자세히 보면, 세로줄이 눈에 덜 띄고 가느다란 두 겹의 가로줄이 두드러지는 형태다. 전체 분위기는 금속 테두리 안에 군더더기 없는 검은색이 대비를 이뤄 정갈해 보인다.
고성능 모델인 S6는 두 겹의 금속 세로줄을 넓은 간격으로 배치해 일반 모델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오프로드 특화 모델인 올로드는 S6처럼 세로줄을 금속으로 처리했지만 가느다란 단일 선을 촘촘히 배치했다. 고성능의 최고봉인 RS 6는 일반 모델과 마찬가지로 테두리를 제외한 부분은 금속을 배제하되 안쪽을 허니콤으로 바꿨다. 테두리는 옵션에 따라 검은색으로 나오기도 한다. A6 싱글프레임은 처음 나온 6세대 모델 때 대부분 후대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췄다.
7세대 A6는 싱글프레임 모양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 등변 사다리꼴을 뒤집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위쪽 양 끝을 살짝 꺾어서 육각형이 되었다. 세부 모델별 형식은 대체로 이전 세대 체계를 따르는데, S6에는 그릴 안의 금속 세로줄이 가로줄로 바뀌는 큰 변화를 줬다. 방향의 변화일 뿐인데 이전 S6와 분위기 차이가 제법 크다. 이전 세대에서 세로 구성이 올로드와 살짝 겹치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가로줄로 바뀌면서 일반형/S/RS/올로드 각각의 독자성이 더 강화되었다.
현재 모델은 8세대이고 국내에도 판매 중이다. 8세대의 싱글프레임 그릴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서 가로로 길어지고 면적이 커졌다. 전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좀 더 당당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만들어낸다. 꼭짓점 부분이 날카로워진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8세대 들어서는 모델별로 싱글프레임 그릴의 디테일에도 굵직한 변화가 생겼다. 일반 모델의 그릴에는 검은 톤을 유지하던 이전과 달리 가느다란 가로줄이 생겨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S6는 이전처럼 두 겹 가로줄을 유지한다. 일반 모델과 S6 모두 가로줄이지만 한 겹과 두 겹이라는 차이가 있다. RS 6는 그릴의 테두리가 범퍼에 통합되어 다른 A6와 구조에 근본적인 차이가 생겼다. 검은색 허니콤 구성은 그대로 유지한다. 올로드는 세로줄이 두 겹으로 바뀌었고 촘촘하던 간격이 넓어졌다. 이런 구성은 Q3, Q7, Q8 등 SUV 라인업과 맥을 같이하는데, 오프로드 특성을 강조하는 올로드의 성격을 드러낸다.
8세대 부분 변경은 그릴의 형태는 그대로 두고 내부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금속 테두리는 유지하면서 내부를 허니콤으로 바꿔 격자형을 기본으로 하던 이전과는 한차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RS 6에 쓰이는 허니콤과 비교하면 구멍 하나의 크기가 크고 모양도 정통 허니콤에서 변형을 줘서 완전히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고성능 모델인 S6의 싱글프레임 그릴은 이전의 연속된 금속 가로줄을 허니콤 일부분을 엇갈리게 금속을 덧대는 식으로 새롭게 응용했다.
A6의 싱글프레임 그릴 체계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 각 모델의 고유한 특징을 확립하고 유지하면서 디테일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 다음 차례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A6의 다음 세대 모델은 전기차가 나올 예정이다. 체계에 큰 변화가 생기는 전환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6 e-트론 콘셉트카는 전기차 시대에 맞는 싱글프레임 그릴 변화를 예고한다. 전기차는 그릴이 필요 없지만 아우디는 싱글프레임 그릴을 유지하며 전기차 시대에도 아우디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A6 e-트론 콘셉트카는 현재 싱글프레임 그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막힌 구성과 무늬 변화로 전기차에 맞게 변한 형식을 보여준다.
A6의 모델 가짓수는 세부 트림까지 포함하면 수십 종에 이르지만, 싱글프레임 그릴 체계만 알면 큰 틀 안에서 종류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싱글프레임 그릴은 아우디를 상징하는 정체성 요소로 큰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모델별로 체계적인 구성을 확립해 차종을 판별하는 요소로도 쓰인다. A6의 인상을 좌우하면서 서로 다른 디테일로 각 모델의 다양성을 확장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