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를 향해 내디딘 아우디 첫발이 거대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아우디의 첫 순수 전기차는 e-트론이다. 2018년 가을 공개되었고 2019년부터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 처음 이 차가 나왔을 때 좋은 차임에도 판매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기차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무엇보다 가격에 민감한 전기차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준대형 전기 SUV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지가 의문이었다. 동급의 Q8이나 Q7, 그리고 Q5 등, 기존의 SUV 강자들이 여전히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e-트론은 기존 고급 대형급 전기 SUV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테슬라 모델 X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치고 나갔다. 본격적으로 판매가 이뤄진 2019년 e-트론은 글로벌 시장에서 총 4만3,376대가 팔렸다. 2020년에는 4만7,324대, 2021년에는 4만9,157대가 팔리며 꾸준하게 높은 판매량을 유지했다. 특히 독일에서의 성적이 눈부셨다.
▪ e-트론 독일 판매량 변화
e-트론은 독일에서 2019년 3,578대가 팔렸는데 이듬해인 2020년 판매량은 8,000대를 넘겼다.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2021년에도 8,691대가 팔리는 등, 계속해서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2022년 독일에서 e-트론은 1만3,253대가 팔렸다. 판매 4년 차라면 신차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사이 경쟁 모델의 수도 증가했다. 그럼에도 e-트론은 개의치 않는 듯 판매량이 껑충 뛰어올랐다.
(자료=독일자동차청)
지난해 e-트론의 판매량은 독일 내 아우디 전기차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이었다. 또한 프리미엄 전기 SUV 중 연간 1만 대 판매량을 넘긴 두 개의 모델 중 하나였다.(다른 하나는 Q4 e-트론) 일각에선 독일 전기차 시장이 호황을 누린 덕이었다고 Q8 e-트론 선전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을까? 올해 1월 독일 전기차 시장은 갑자기 식었다.
2022년 1월과 비교해 보니 13.2%나 준 결과였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고 갈 줄 알았는데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같은 판매 감소세는 보조금 축소와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한 상황에서도 전기차 3개 모델이 월간 판매량 1,000대를 넘겼다. 테슬라 모델 Y, 폭스바겐 ID.4/5, 그리고 아우디 Q8 e-트론이다.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Q8 e-트론이 독일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가의 고급 전기차가 출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인기를 누리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나쁜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로 말이다. Q8 e-트론은 판매 5년 차에 들어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차 효과는 고사하고 일반적으로 판매량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시기다. 그래서 이때쯤 제조사들은 페이스리프트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아우디 역시 지난해 11월 e-트론을 Q8 e-트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공개했다.
신형의 경우 12월 하순부터 생산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1월 판매량은 아직 신형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고급 프리미엄 전기 SUV는 왜 이렇게 시장에서 힘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단 등장 전부터 독일에서는 높은 관심을 보였다. 얼마 전 독일 아우디 법인의 최근 5년간 유튜브 채널 조회수를 살펴봤다. 아우디 Q8 e-트론 관련 영상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우디 브랜드에 대한 독일인들의 기본적인 높은 호감, 거기에 이러한 아우디가 내놓은 첫 전기차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해졌다. 자연스럽게 독일 자동차 시장에서 이 차는 이슈가 됐다. 전문 매체와 기관에서 실시한 성능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도 Q8 e-트론이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데 촉매가 됐다.
또한 Q8 e-트론을 구입한 운전자들의 입소문도 무시할 수 없다. 입소문이 퍼지며 좀처럼 꺾이지 않는 단단한 구매력이 독일 시장에 형성되었고, 그것으로 스테디셀러의 모든 조건이 완성됐다. 그렇다면 2023년 이후는 어떨까? 지난 연말 공개된 Q8 e-트론은 배터리 용량을 높인 것은 물론, 공기역학적인 디자인과 배터리 효율을 위한 소프트웨어적인 개선 등을 복합적으로 만들며 이전 모델보다 더 기대를 갖게 했다.
스타일이 더 좋아진 것은 물론, 재활용 소재의 적절한 이용 등, 환경을 위한 노력도 진하게 담아냈다. 좋은 차가 더 좋아졌다. 당연히 시장의 기대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에 진심인 아우디, 그 아우디가 가장 먼저 내놓은 전기차 Q8 e-트론은 앞으로도 프리미엄 전기 SUV 시장을 가장 앞에서 이끌어 갈 것 같다.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들이 이런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전기차 시대를 향해 내디딘 아우디 첫발이 거대한 디딤돌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