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은 왜 ‘천의 얼굴’이라고 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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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싱글프레임

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은 왜 ‘천의 얼굴’이라고 불릴까

브랜드 이야기,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 아우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싱글프레임 그릴의 역사

아우디 A8 싱글프레임 그릴

비슷해 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싱글프레임 그릴의 조합 가능성은 무한하다

자동차 유행은 시기를 탄다. 한 번 시작된 유행이 무한정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유행은 몇 년 반짝하다가 사라지는가 하면, 수십 년 동안 꾸준하게 이어진 유행은 아예 자동차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비교적 근래에 꾸준하게 이어지는 유행으로는 싱글프레임 그릴을 들 수 있다.

싱글프레임 또는 모노프레임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틀로 구성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뜻한다. 보통 자동차 그릴은 범퍼 위에 뚫려 있고, 아래쪽에는 공기흡입구가 자리 잡는다. 싱글프레임은 범퍼 위아래 그릴과 공기흡입구를 한데 합친 커다란 하나의 그릴이다.

왼쪽부터 2003년에 선보인 파이크스 피크, 누볼라리, 르망 콰트로 콘셉트카

싱글프레임 그릴을 본격적으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브랜드는 아우디다. 2003년 파이크스 피크, 누볼라리 콰트로, 르망 콰트로 콘셉트카를 선보이면서 싱글프레임 그릴을 적용했다. 양산차에는 2004년 A6를 시작으로 점차 전 모델로 확대해 나갔다. 1990년대 후반 보행자 보호법이 대두되면서 이전까지 돌출한 형태이던 범퍼를 평평하게 다듬는 쪽으로 전면부가 변했다. 그릴의 디자인적 역할이 더 커지면서 싱글프레임 그릴은 자동차 디자인의 한 축이 되었고, 아우디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싱글프레임 그릴은 자동차 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디자인 요소를 이룬다.

싱글프레임 그릴을 처음 달고 나온 아우디 A6 6세대

아우디의 싱글프레임 그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갔다. 디자인 변화, 시대 흐름, 차종 확대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되면서 세분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그릴의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어서 그릴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굳이 그릴을 만들지 않아도 되기에 그릴의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정체성을 알리는 요소로서는 여전히 가치를 유지한다. 아우디는 전기차에도 싱글프레임 그릴을 유지하며 정체성을 이어 나간다. 그만큼 싱글프레임도 다변화되었다.

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 변화

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은 현재까지 3단계로 변화했다. 초창기에는 사각형, 그중에서도 사다리꼴을 뒤집은 형태다. 위쪽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살짝 좁아진다. 위아래를 연결해서 일반 그릴보다는 커 보이지만 현재 그릴보다는 작다. 전면부 면적의 대략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당시 아우디 모델은 차체 전반에 걸쳐 매끈하고 간결한 라인이 특징이었는데, 단순한 그릴이 차 전체 분위기와 맞아떨어졌다.

아우디 A8. 사각형에 가까운 초창기 싱글프레임 그릴

이후 싱글프레임 그릴은 육각형으로 바뀌었다. 위쪽 모서리 양 끝에 살짝 사선을 넣어 전체 변이 여섯 개가 되었다. 이전 싱글프레임 그릴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면서 세부적인 부분에 변화를 줬다. 그릴뿐만 아니라 차체 전체에 걸쳐 디테일한 라인이 늘어났다. 특히 그릴 옆 헤드램프의 형상이 라인과 꼭지점이 늘어나는 입체적인 형상으로 바뀌었다.

아우디 A6. 육각형으로 변한 싱글프레임 그릴

다음 차례는 변화의 폭이 크다. 가로로 길어지고 육각형이 좀 더 뚜렷해졌다. 차지하는 면적도 대략 전면부의 절반 정도로 늘었다. 그릴의 각도가 부각되면서 날카로운 감성이 두드러진다. 차체도 날카로운 모서리와 주름 등 요소가 많아져서 그릴과 조화를 이룬다. SUV는 조금 달라서 팔각형 형태를 띤다. 위아래 폭이 세단보다 긴 만큼 팔각형 형태가 좀 더 구성져 보인다.

아우디 e-트론 GT

싱글프레임 그릴의 변화와 더불어 눈여겨볼 부분은 확장이다. 전기차 모델이 라인업에 추가되면서 그릴의 종류도 늘었다. 형태는 그대로이면서 전면부가 막힌 구성으로 전기차만의 특성을 살린다. 4도어 쿠페인 e-트론 GT는 육각형 그릴, SUV인 e-트론과 Q4 e-트론은 팔각형 그릴 형태를 유지하면서 독특한 패턴으로 구멍을 막았다. 전기차에는 굳이 그릴을 만들지 않아도 되지만 아우디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싱글프레임 그릴을 전기차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전기차여도 그릴만 보고도 아우디 모델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아우디 PB18 e-트론 콘셉트카

콘셉트카도 싱글프레임 그릴의 확장을 보여준다. PB18 e-트론(2018)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속이 빈 형태로 선보였다. 스카이스피어 콘셉트카(2021)는 테두리의 양쪽 경계를 넓히고 조명을 사용해 미래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랜드스피어 콘셉트카(2021)는 중간에 꺾이는 구조로 구성해 싱글프레임 그릴의 자유로운 변형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반스피어 콘셉트카(2022)는 스카이스피어와 비슷하면서 전면부를 가득 채워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우디 RS 6

하위/상위 트림, 고성능 S와 RS, 일반형과 스포트백 등 세부 모델이나 트림에 따라서도 그릴은 다양해진다. 색상, 크롬 장식, 가로선 또는 세로선, 패턴 모양과 크기 등 요소의 조합에 따라 그릴의 분위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각각 다른 그릴이 모델을 구분하는 표시 역할을 해낸다.

아우디 로제마이어 콘셉트카

싱글프레임 그릴은 21세기 자동차 디자인의 산물인데, 사실 훨씬 이전인 1930년대에 선보였다. 1930년대 중반에 나온 아우토우니온 타입 C/D 레이스카의 그릴은 위아래로 길게 전면부를 채운 형태다. 요즘 싱글프레임 그릴과 형태는 좀 다르지만 개념 자체는 일맥상통한다. 2000년에 선보인 로제마이어 콘셉트 역시 아우토우니온 시절 경주차의 그릴을 본뜬 싱글프레임 그릴을 갖췄다.

네모난 그릴은 한정된 공간이다. 자동차의 전면부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하므로 그릴을 다양화하기는 쉽지 않다. 디자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그릴은 제약이 더 커서,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를 줘야 한다. 아우디는 싱글프레임이라는 한정된 틀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왔다. 세부적인 부분에 변화를 주고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수많은 조합을 양산해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선보인 싱글프레임 그릴 중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모델과 트림에 따라 크기, 모양, 무늬, 장식 등이 미세하게 다르다. 종류만 수백 종이 넘고, 조합 가능성을 고려하면 경우의 수는 수천 가지로 늘어난다. 가히 천의 얼굴이라 할 만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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