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눈 많이 온다는데 차를 갖고 가야 해, 말아야 해?” 평소 자신의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에 이런 고민에 빠져 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만큼 눈길 운전은 신경 쓸 것이 많아 운전자를 소극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눈만 내렸다 하면 자신감이 올라가는 운전자들이 있다. 바로 차 트렁크에 아우디 콰트로 배지를 가진 오너들이다. 평년보다 더 많은 눈이, 더 자주 내리고 있는 2022년 겨울 올해로 42주년을 맞이한 아우디 콰트로의 역사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살폈다.
quattro?
콰트로(quattro)가 아우디의 AWD 시스템이란 것을 삼척동자도 아는 2022년 겨울이지만, 1980년엔 달랐다. 제50회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등장한, 숫자 4를 뜻하는 이 이탈리아어는 아우디가 내놓은 신차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평범한 신차는 아니었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직렬 5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에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을 넣고 5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린 최고출력 200마력짜리 쿠페. 이른바 아우디가 가진 모든 기술력을 총망라한 야심작이었다.
무엇보다 시장은 콰트로의 구동방식에 우려 섞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AWD는 험지를 누비는 군용 차 또는 특장차에나 쓰였기 때문이다. 무겁고, 비싸고, 기름도 많이 먹는 데 굳이 네 바퀴 굴림 방식을 일반 승용차에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다.
크게 눈뜨고 쳐다보는 시장의 차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우디는 월드랠리 챔피언십(WRC)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엄청났다. 1981년 참가를 시작한 이후 1985년까지 무려 23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것. 콰트로는 고성능 모델인 만큼 아우디 공장에서도 전용 라인을 따로 마련해 공정의 상당 부분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조립했다. 1980년부터 1991년 생산을 종료하기까지 아우디는 1만 1,452대의 콰트로를 생산했는데 11년에 달하는 생산기간 동안 차의 외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미 처음부터 군더더기 하나 없이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깔끔한 디자인만 있었던 것이다.
Over the top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자동차 광고가 있다. 1986년 아우디가 100 CS 콰트로로 스키점프대를 올라가는 광고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밧줄을 차체 바닥에 연결하긴 했지만, 랠리 드라이버 헤럴드 데무스(Harald Demuth)가 아우디 100 CS 콰트로를 운전해 핀란드의 카이폴라(Kaipola) 스키점프대를 거침없이 올라가는 영상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후 아우디는 콰트로의 눈부신 성공을 기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자사의 AWD 시스템에 콰트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만 앞에 글자는 소문자로 바꾼 채(quattro).
여담이지만 아우디의 스키점프대 사랑은 그 후로도 쭉 이어졌다. 2005년에는 1986년에 올랐던 점프대를 똑같이 복원해 S6로 다시 한 번 그날의 쾌거를 재현했다. 또 불과 3년 전인 2019년에는 서킷과 랠리크로스 챔피언인 마티아스 엑스트룀이 개조한 아우디 e-트론으로 오스트리아 키츠뷔엘에 있는 하넨캄산의 악명 높은 마우스 팔에 코스에서도 가장 가파른 85도의 오르막길 구간을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기술을 통한 진보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쓰이는 아우디의 브랜드 철학, ‘기술을 통한 진보’가 널리 알려진 데에도 콰트로는 일등공신이었다. 1983년, 아우디의 브랜드 PR을 맡았던 광고 에이전시가 WRC에서 연전연승을 이끌어내던 콰트로의 광고를 위해 거의 방치돼있다시피 했던 이 슬로건을 끄집어내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디가 WRC에서 빛나는 성과를 내던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콰트로 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했다. 지금처럼 차가 알아서 다 해주는 방식이 아닌, 운전자가 상황에 따라 일일이 스위치를 조작해 디퍼렌셜을 잠그고 풀어야 했다.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기술이었던 셈. 더욱 많은 소비자가 콰트로의 진가를 일상생활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된 시기는 1986년이다. 센터 디퍼렌셜을 토센 방식으로 바꿔 각 바퀴에 걸리는 부하에 따라 구동력이 주행상황에 따라 75:25~25:75까지 스스로 조절됐다.
아우디는 이후에도 숨 가쁘게 기술을 통해 진보했다. 1995년에는 콰트로를 집어넣은 첫 디젤 엔진 모델인 A6 2.5 TDI를 출시했고 1999년에는 가로 배치 엔진을 가진 A3와 TT에 전기 유압식 다판 클러치 방식의 콰트로를 집어넣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전후방 액슬 간에 40:60 동력 배분이 가능한 센터 디퍼렌셜을 선보이며 또 한 번 도약했다.
2016년에는 효율성에 최적화된 전자식 콰트로, 콰트로 울트라를 개발했다. 2019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순수전기차 e-트론을 통해 전자식 콰트로를 선보였고 그로부터 1년 뒤엔 e-트론 S와 아우디 e-트론 S 스포트백에 전동식 토크 벡터링을 탑재했다. 각 휠이 별도의 모터로 구동되어 후륜 간에 동력 이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0.1초 내에 강력한 토크가 즉각적으로 뿜어져 나와 코너에서 탈출할 때 폭발하듯 빠져나간다.
오늘날 콰트로는 컴팩트 모델인 아우디 A1을 제외하고 고성능 S 모델과 RS 모델을 포함한 모든 모델에 들어간다. 이렇게 아우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콰트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밤을 꼴딱 새웠다. 아, 바깥을 내다보니 또 눈이 쏟아진다. 오늘도 아우디 콰트로 오너들은 남모르게 슬며시 웃겠군.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