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전기차가 대거 등장했다. 각 브랜드마다 첫 전기차를 선보이던 시기는 지났다. 전기차 모델이 쌓이고 라인업이 형성됐다. 그 말은 전기차 모델만으로도 다양한 취향과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내연기관 자동차만큼 라인업이 촘촘하지 않으니까. 쌓아온 시간이 다르다. 그럼에도 선택 폭은 확실히 늘어났다.
특히 브랜드마다 선택 폭이 달라 흥미롭다. 기존 라인업처럼 크기별로 선보이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SUV 위주로 라인업을 짜는 브랜드도 있다. 아우디는 조금 다르다. 규칙보다는 모델별 성격이 각각 돋보인다. 하나로 관통하는 점이라면 서로 다른 취향을 반영한 점이랄까. 흥미로운 라인업이다.
아우디의 첫 전기차는 e-트론이다. 고급 SUV를 지향한다. 덩치도 적당히 크다. Q5와 Q7 사이 어디쯤. 첫 전기차로서 플래그십 전기 SUV 역할을 맡았다. 아우디가 앞으로 전기차를 어떻게 빚을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e-트론은 안팎이 기존 아우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격보다는 기존 질감의 연속성을 담보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잘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전기차로서 참신한 요소도 잊지 않았다. 사이드미러 대신 자리 잡은 ‘버추얼 미러’가 대표적. 브레이크 조작만으로 회생제동의 효율을 극대화한 ‘브레이크바이와이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지만 신선하다. 익숙함 속에 신선함을 녹였다. 여전히 아우디를 탄다는 느낌을 유지한 채 전기차라는 새로움을 가미했달까. 아우디 전기차의 질감을 가늠하게 했다.
e-트론은 일단 전기차 쇼케이스 모델로서 기능한다. 아우디라는 브랜드가 선보이는 전기차의 수준을 알게 한다. 그러면서 전기차라는 새로운 파워트레인에 관심 있으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진중함을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아우디가 프리미엄 브랜드니 당연한 말일까. 하지만 실제 느낌을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차는 이질적인 느낌까지 새로움이라는 영역으로 뒤섞는다. 누군가에겐 그 느낌이 신선함보다 어색함으로 다가온다.
미래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안팎도 마찬가지다. 꼭 미래적인 형태가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급진적인 변화는 언제나 충격이 뒤따르는 법이다. 거슬리는 점을 지우고 장점을 유지하는 조율이야말로 솜씨다. e-트론은 그 부분에 집중했다. 진중하고 고급스런 전기 SUV를 원하는 사람에게 e-트론은 해답을 선사한다. 유럽에서 잘 팔린 이유가 있다.
RS e-트론 GT는 e-트론과 또 다르다. SUV 다음에 선보일 전기차라면 자연스레 세단을 떠올린다. 라인업의 기본이 되는 모델이니까. 아우디는 과감하게 전기 파워트레인의 짜릿함에 집중했다. RS e-트론 GT는 전기 파워트레인을 품은 고성능 GT다. 게다가 기존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토크를 토대로 가공할 출력을 뽐낸다. 고급 전기차의 중요한 특징인 고성능에 주목한 셈이다. 어떻게 보면 아우디 전기차 라인업의 헤일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아우디 전기차 브랜드인 e-트론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다음 수다.
RS e-트론 GT는 출력도 출력이지만 외관 디자인에도 힘을 줬다. 단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고성능 자동차의 미적 쾌감을 자극한다. 차체에는 볼륨감 선명한 곡선이 넘실거린다. 기존 아우디에서 볼 수 없던 유려함이다. 싱글프레임과 헤드라이트를 하이글로시로 연결한 전면 인상 역시 기존과 다르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아우디답다. 외관을 다르게 빚더라도 아우디만의 간결함과 스타일이 담겨 있는 까닭이다. 기존 라인업의 헤일로 모델인 R8과는 결이 다른 전기차 라인업의 헤일로 모델. RS e-트론 GT가 새로 확장한 영역이다.
때로 전기차를 효율의 관점만이 아닌 특별한 탈것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아직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그런 점에서 고성능 전기차는 특별한 탈것다운 감각을 극대화해 만끽하도록 하는 최적의 형태다. RS e-트론 GT는 그 지향점에 온전히 겹친다. 게다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전기차로서 매력도 뽐낸다. 전기 파워트레인의 출력만 앞세우지 않는 까닭이다. 고성능 자동차에 걸맞은 탐스러운 외관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모로 즐길 게 많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대에 진입하는 길목에서 특별한 자동차를 탄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감각 다른 짜릿함을 완숙한 만듦새와 함께 즐기려는 사람에게 RS e-트론 GT는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공한다.
아우디는 e-트론과 RS e-트론 GT를 순차적으로 내놓았다. 각 장르의 꼭짓점 역할을 하는 모델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을 통해 고급 전기차의 덕목을 각기 다른 형태로 풀어냈다고도 할 수 있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형태를 가장 반짝거리게 하는 두 가지 방법. 시선을 뺏고 소유욕을 자극했으니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이 손에 닿을 만한 모델이 필요하다. Q4 e-트론은 그 역할을 해내기에 적절하다. 볼륨 모델의 조건을 충실히 수행한다. 일단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SUV 형태다. 크기 대비 공간이 출중하다는 솔깃한 특장점도 명확하다. 그러면서 다양한 전기차가 밀집한 가격대에 걸친다. 한마디로 대중적으로 소구할 전기차란 뜻이다.
Q4 e-트론은 대중적인 만큼 보편타당한 가치를 고려한다. 형태가, 용도가, 쓰임새가 두루두루 선호할 지점을 충족한다. 그렇다고 밋밋할 리 없다. 스타일에 관해 언제나 앞서 가는 아우디 아닌가. 정교하게 세공한 헤드라이트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주간주행등 그래픽을 바꿀 수 있는 ‘디지털 라이트 시그니처’ 기능으로 심적 흐뭇함을 채운다. 보편타당한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특별한 무언가를 놓치지 않는 셈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아우디의 스타일이다. 다양한 전기차가 포진한 영역에서 Q4 e-트론이 돋보일 강점이다. 효용성 높지만 매력 요소도 잊지 않는 모델. 필요 그 이상의 지점을 건드리는 모델이냐 아니냐 차이는 크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에게 Q4 e-트론은 대안 없는 전기차다.
e-트론, RS e-트론 GT, Q4 e-트론은 각기 다르다. 크기가 아닌 성격이 다르다. 덕분에 다채로운 취향을 조준한다. 아우디가 현 시점까지 전기차 라인업을 꾸리고 있는 독특한 전략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