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못하게 신차 시승을 밤에 할 때가 있다.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보의 습득이나 주변 환경 파악에도 제약이 생겨 낮에 시승하는 것보다 신경 쓸 게 많다. 그런데 가끔,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시승을 나갈 때가 있다. 차가 가진 조명기술이 너무 대단한 경우다.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이 딱 그렇다.
3년 만에 부분변경한 아우디의 플래그십 A8 L은 전면 생김새를 과감하게 매만졌다. 싱글프레임 그릴을 바깥으로 내몰아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이 더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좌우 모서리를 끌어올려 헤드램프에 맞닿게 했다. 그릴 패턴에도 변화를 줬다. 수평으로 죽죽 길게 뻗었던 이전과 달리 작은 날개처럼 생긴 핀을 가운데 아우디 엠블럼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되게 촘촘하게 채웠다. 그 덕에 빛을 받을 때 훨씬 화려한 얼굴을 갖게 됐다.
전면 얼굴이 더욱 극단적으로 다가오는 데는 달라진 헤드램프 그래픽도 한몫한다. 마치 주간주행등이 싱글프레임 그릴에 뿌리를 두고 싹터 나온 것처럼 이어지게 하여 널찍함을 배가시켰다. 또 아래쪽을 향하는 작은 주간주행등 역시 범퍼의 디테일로 이어지며 싱글프레임 그릴에 힘을 응집하는 효과를 낸다.
사실,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의 램프는 이런 외형적인 변화보다 기능적인 개선이 훨씬 놀랍다. 아우디가 양산차에 집어넣은 라이트 기술 중 가장 진보한 기술인 레이저 라이트를 탑재한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 기술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존에 선보인 HD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이지만 차이점은 엄청나다. 일반 LED보다 높은 밝기를 갖고 촘촘하게 배열된 광선을 통해 더 넓은 가시 범위를 갖게 해주는 것이 이전 HD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였다면,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 기술은 차가 진행하는 방향의 바닥에 빛을 드리워 운전자, 주변운전자와 커뮤니케이션까지 한다.
예를 들면 바닥에 연속된 화살표를 표시해 운전자에게 진행방향을 알려 준다. 또 차선변경을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면 이동하려는 차선에 카페트를 까는 것처럼 빛을 넓게 확장한다. 운전자에겐 미리 들어갈 공간을 밝혀 안전을 확보하고, 옆 차선 운전자에겐 차가 진입할 정보를 미리 제공해 주의를 환기한다.
테일램프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OLED 방식이지만 그래픽이 달라졌다. 하나로 이어져 있던 주간주행등의 가운데를 삼등분하고 키락, 언락했을 때 보여주는 세리머니는 더 화려하게 매만졌다. 앞뒤로 화려한 램프들 덕분에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은 야간 운전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선된 라이트 기술은 차주의 취향에 따라 키락, 언락할 때 표시되는 헤드램프, 테일램프의 그래픽까지 맞춤 설정할 수 있게 해 감성적인 만족도까지 극대화한다.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은 롱휠베이스 모델인 만큼 차 사이즈가 상당하다. 5.3m가 훌쩍 넘는 길이에, 2m에 이르는 너비, 그리고 휠베이스도 자그마치 3.13m에 달한다. 덕분에 1열 시트를 20cm 가까이 앞뒤로 슬라이딩 할 수 있다. 이동집무실이란 콘셉트에 걸맞게 2열 공간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든 편의장비가 준비돼있다. 먼저 1열 시트 뒤에 고정된 두 대의 태블릿 PC는 분리할 수 있는데 e메일을 작성하거나 웹서핑도 할 수 있다.
센터 암레스트에는 작은 태블릿이 들어갔던 이전과 달리 디스플레이가 들어갔다. 이제 분리할 순 없지만 1열 시트 뒤 태플릿 조작이나 시트위치 조정 그리고 열선, 통풍 시트 작동은 변함없이 가능하다. 머리 위 매트릭스 LED 독서등도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조작한다.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에는 2열 발마사지 기능이 추가됐다. 1열 동승석 뒤판에 자리한 공기주머니가 상석에 앉은 사람의 발을 마사지해주는데 피로회복에 다소 도움이 된다. 마사지 기능이 들어가며 1열 동승석 통풍시트 기능은 빠졌다.
앞자리는 블랙 하이그로시 소재 대신 리얼 우드를 더 많이 썼다. 그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우디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유려한 인테리어에 하이테크 요소와 고급 소재를 잘 버무려 놓았다. 오디오 조작버튼, 에어컨 조절버튼을 모두 센터페시아에 있는 커다란 디스플레이에 빠짐없이 담았는데 설명서를 보지 않아도 찾기 쉽고 다루기도 편하다. 스티어링휠도 마찬가지. 운전 중에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엄지손가락만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버튼을 배치했다.
3년 전, A8 L 콰트로 프리미엄을 탔을 때 인상적인 부분은 주행 질감이었다. 대형세단임에도 운전의 재미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신형도 동력기관에 변화는 없다. 3.0L V6 터보 가솔린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340마력 최고출력을 5000~6400rpm에서 낸다. 최대토크도 변함없이 51.0kgf.m으로 1370~4500rpm에서 뿜어져 나온다. 제원표상 숫자보다 A8의 성능은 더 호쾌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바로 48V 마일드하이브리드 방식 덕분이다. 시속 55~160km에서 최장 40초간 타력주행을 하며 연료 효율성과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체감하기에는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 그리고 추월 가속할 때 힘을 보태는 게 더 크게 와 닿는다.
MLB 에보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은 몸놀림도 야무지다. 특히 연거푸 이어지는 코너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데 경쟁차와 비교할 때 우위에 있는 부분이다. 이런 탄탄한 주행 질감에는 다이내믹 올 휠 스티어링 기술과 어댑티브 에어서스펜션도 한몫 단단히 한다. 저속에선 앞바퀴와 반대 각도로 뒷바퀴를 틀어 회전반경을 좁히고, 고속에선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를 틀어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뒷바퀴 조향 기술과 주행상황에 맞춰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조절하는 그 기술이다.
웬만한 사무실보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뒷자리와 운전의 재미가 그득한 앞자리를 모두 갖춘 대형세단이라니. 그렇게 더 뉴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은 또 한 번 앞서 간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