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로에서 보는 아우디는 순한 맛이다. 진짜 매운 맛은 모터스포츠에서 드러난다.”
슈퍼 히어로는 옷을 바꿔 입으면 능력치가 크게 솟아오른다. 평소와 다르게 힘도 세지고, 외부 충격도 막아내고, 심지어 날아다니거나 차원을 이동하기도 한다. 능력치는 오르지만 신체나 얼굴은 그대로이므로 정상인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패턴과 조금 다른 슈퍼 히어로도 있다. 헐크는 정상적인 사람에서 괴수로 변한다. 얼굴도 달라지고 체격도 커지고 피부색도 바뀐다. 극과 극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우디 브랜드도 슈퍼 히어로와 특성이 비슷하다. 일반 모델은 세련된 디자인과 매끈한 라인, 첨단기술을 결합한 럭셔리 감성이 두드러진다. S나 RS 배지를 달면 슈퍼 히어로처럼 능력치가 커진다. 출력이나 토크가 기본형의 두세 배로 뛰어오르고, 동적인 성능이 더 극적인 수준으로 올라간다. 배지가 새로 붙고 외관 부품 일부가 달라지지만 일반 모델과 비교해 형태와 생김새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더 강해졌지만 아우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아우디의 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런 아우디가 때로는 극한 역동성을 추구하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 모델 분야를 벗어난 장르에 완전히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마치 헐크의 변신 전후 두 모습처럼 상반된다. 얼마 전 출전을 선언한 F1, 다카르 랠리에 나가는 RS Q e-트론, 전기 레이스카 S1 e-트론 콰트로 후니트론 등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꽤 놀라운 반전이지만, 아우디의 역사와 기술과 모터스포츠 업적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자동차의 본질에 들어맞는 내재된 본성이라 할 수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아우디의 모습을 모터스포츠를 통해 알아본다.
죽음의 랠리
(feat. RS Q e-트론)
다카르 랠리는 ‘죽음의 랠리’로 불린다. 보름 동안 사막과 산길 등 험난한 오지를 달리는 극한 레이스다. 주행 거리만 1만km 정도 되는 장거리를 극한 상황에서 빠르게 달리므로, 자동차의 내구성은 물론 드라이버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출발점과 목적지 사이를 정해진 길 없이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 찾아가는 방식이라 어려움은 배가 된다. 상당수가 탈락하는 만큼 완주 자체가 큰 성과다.
랠리카는 매끈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레이스카와 다를 수밖에 없다. 험로와 온갖 변수에 견디도록 탄탄하고 강인한 특성을 불어 넣는다. RS Q e-트론은 SUV 형태지만, 랠리카답게 다양한 모터스포츠 부품을 적용해서 양산차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아우디 Q 라인업에 있는 Q7이나 Q8 등 대형급 SUV와는 전혀 다른 거친 면모가 두드러진다.
아우디는 모터스포츠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기술을 개발해왔다. 다카르 랠리 출전도 새로운 도전이다. RS Q e-트론은 다카르 랠리에 처음 선보이는 전기 파워트레인 랠리카다. 전동화를 비전으로 내세우는 아우디가 모터스포츠를 기술 개발의 무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포뮬러 E에서 검증받은 전기모터와 DTM에서 무르익은 2.0L 4기통 TFSI 엔진을 가져와서 전기 파워트레인을 구성했다. 엔진은 배터리 충전 용도로만 작동한다.
올해 처음 다카르 랠리에 출전했음에도 여러 스테이지에서 우승하고 나머지 스테이지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RS e-트론은 일반 모델만 봐서는 상상하기 힘든 아우디의 진짜 본 모습을 보여준다.
‘탄소 중립’ 향해 달리는 F1 진출
F1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가장 유명한 경기다. 대회 규모도 크고, 관람객이나 시청자 수도 많고, 경주차의 성능 또한 극한을 추구한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나 기술 개발 효과 등 이점이 많지만 투자 금액이 크고 경쟁이 치열해서 성과를 내기는 만만치 않다. 그만큼 기술력이나 이해관계 등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승용차로 익숙한 아우디와 극한 경주차가 출전하는 F1과는 이미지가 상반돼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 아우디는 이미 르망 24시에서 내구 레이스 전용 LMP1 레이스카를 앞세워 여러 차례 우승했다. 양산차와는 전혀 다른 F1 레이스카를 만든다고 해도 이상할 바 없다.
아우디는 지난 8월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F1 진출을 선언했다. 그때 레이스카 콘셉트와 리버리도 공개했는데, 실제로는 2026년부터 파워트레인 공급자로 시작한다. 2026년에는 파워트레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1.6L V6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은 유지하지만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개발비가 많이 드는 MGU-H(E-터보)를 사용하지 않고, MGU-K(에너지 회생 시스템)의 출력을 세 배로 높인다. 화석 연료를 포함하지 않는 100% 친환경 연료 사용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전동화 비중을 높이고 친환경 특성을 강화하는 점이 주요 변화인데, 아우디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과 맞아떨어진다. F1은 2030년까지 탄소 중립 레이스를 실현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아우디가 왜 F1에 진출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우디는 최근 자우버팀을 전략 파트너로 선정했다. 2026년이면 아우디 워크스팀이 극한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켄 블록, 그리고 S1 e-트론 콰트로 후니트론
우락부락하고 요란한 모습이 범상치 않다. S1 e-트론 콰트로 후니트론(이하 S1 후니트론)은 켄 블록을 위해 만든 차다. 켄 블록? 우리가 아는 그 켄 블록이 맞다. 스턴트 레이스로 유명한 드라이버이고, 특히 짧은 코스에서 다양한 코너와 장애물을 통과하는 경기인 짐카나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짐카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 드리프트여서, 켄 블록이 타는 차는 드리프트 하기에 최적인 차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전동화 물결은 모터스포츠에도 어김없이 밀려들었다. 전기차 대회가 하나둘 늘어나고, 전통적인 대회에도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도입하고 있다. 켄 블록이 타는 S1 후니트론도 이름 가운데 들어간 ‘e-트론’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차다. 드리프트 퍼포먼스를 전기차로 한다니, 모터스포츠 분야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S1 후니트론은 2021년 말에 콘셉트카로 선보였다. 앞뒤로 커다랗게 달린 윙이 특징인 과격한 인상이 인상적이다. 아우디 마니아라면 눈치챘을 텐데, 이 차의 디자인은 1980년대 선보인 아우디 스포츠 콰트로 S1 E2 랠리카에서 영감을 받았다. S1 E2는 1980년대 중반 WRC와 파이크스 피크에서 활약하며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최신 S1 후니트론에는 전동화 추세에 맞춰 전기모터 두 개를 얹고 콰트로 시스템을 적용했다.
S1 후니트론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자동차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묘기를 보여주고, 도로는 물론 실내 가리지 않고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다 지나다닌다.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바뀌어도 자동차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