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RS 5 스포트백, 이런 요물 같은 자동차를 봤나
‘물을 끼고 달려라.’ 드라이브 코스에 관한 철칙이다. 그동안 겪어보니 타율이 좋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탁 트인 시야는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게다가 물 주변에는 푸른 자연이 절로 따른다. 보는 재미가 있다. 물길 따라 달리기에 길도 단조롭지 않다. 완만한 곡선이나 구불구불한 도로가 물 옆으로 이어진다. 풍경과 리드미컬한 길, 드라이브를 완성하는 두 요소다.
차종에 따라 특별한 코스를 더할 수도 있다. 고성능 모델이라면 굽잇길을 빼놓을 수 없다. 랩타임을 재는 것처럼 달릴 필요도 없다. 가파른 코너에서 조금, 아주 조금 속도를 올려도 그만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느낄 건 다 느낀다. 날카로운 핸들링과 흐트러지지 않는 거동이 운전자를 미소 짓게 한다. 고성능일수록 증폭하는 소리가 주는 쾌감 또한 크다. 자동차가 주는 짜릿함의 집합체랄까. 보통 물길 주변에는 고갯길도 있다. 산 옆에 물이 있는 게 보통이니까. 운치 있게 달리다 짜릿한 쾌감으로 마무리. 이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아우디 RS 5 스포트백을 동반자로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우디 RS 5 스포트백은 아우디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은 아니다. RS 6 아반트나 RS 7이 더 크고 강력하며 상징적인 숫자를 많이 품었다. RS 5 스포트백은 두 모델에 비해 배기량도 적다. 엔진 실린더 개수도 적다. 고성능이지만 꼭짓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RS 5만의 장점은 명확하다. 상대적으로 아담한 차체가 주는 민첩함.
RS 6 아반트는 2,215kg이다. 반면 RS 5 스포트백은 1,810kg이다. 가벼운 무게가 출력 차이를 상쇄한다. 강변만 달리는 코스였다면 더 풍성한 RS 6 아반트나 RS 7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굽잇길까지 달리면 또 달라진다. 굽잇길에선 민첩할수록 더 즐겁다. 드라이버 실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내겐 콤팩트한 차체가 주는 이점이 더 다가왔다. 그렇기에 RS 5 스포트백.
오늘의 코스는 남양주 거쳐 가평 지나 춘천 배후령까지. 오른쪽에 강이 계속 이어지는, 익히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고속도로로 춘천까지 바로 갈 수 있지만 굳이 국도를 택했다. 돌아가는 대신 경치는 더 챙길 수 있으니까. 북한강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결정이 옳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담기자 패들시프트로 기어 단수를 낮췄다. 맛깔스런 배기음이 실내에 차올랐다. 굳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고성능의 결. 이럴 땐 음악도 필요 없다. 자동차가 연주하는 합주를 즐길 뿐이다. 그냥 세단을 타고 왔다면 느끼지 못할 쾌감. 같은 길을 달려도,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차이는 명확하다. 그래, 이 맛이야.
배후령 전까지 주행모드는 자동이면 족하다. 가끔 기분에 따라 컴포트로 놓는 것도 괜찮다. 국도는 아무래도 요철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컴포트에 놓으면 나름대로 안락함을 선사한다. 가는 길이 피곤하지 않다는 점은 스포츠 세단의 장점 아닌가. 스포츠 세단은 일상에선 세단 역할을 하면서 결정적일 때 스포츠카로 돌변하는 변신의 귀재다.
물론 RS배지 단 만큼, 기본적으로 하체가 탄탄하다. 그럼에도 엉덩이를 괴롭히는 수준은 아니다. 예전 RS배지 모델과 달라진 점이다. 전보다 세단으로서 품이 넓어진 증거다. 성격의 폭이 넓다는 점은 다시 봐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운전자 입장에선 다양한 상황을 합당하게 즐길 여지가 많아진다. 느긋하게 달릴 땐 긴장을 풀게 만들고, 달려야 할 땐 날카롭게 돌변하니까. 하체 만드는 솜씨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튼 하나로 성격이 휙휙, 잘도 바뀐다.
춘천으로 진입하면 붕어섬과 하중도 상중도로 이어지는 강변길이 나타난다. 도로명은 박사로. 춘천에 들고날 때 꼭 들리는 길이다. 오른쪽에는 널찍한 강이, 왼쪽으로는 깎인 산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그 사이를 좁은 길로 오갈 수 있다.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느낄 정도로 풍광이 좋다. 길이 좁아 속도는 높일 수 없지만, 빨리 달리지 않기에 더 오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고성능을 즐길 때 속도는 부차적 요소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고성능은 충분히 몸에 스며든다. 짧은 구간을 스프린터처럼 달릴 때 전해지는 가감속의 쾌감, 은근히 크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춘천 배후령 고개. 이젠 배후령터널이 뚫려 교통량이 거의 없는 고갯길이다. 한국의 ‘아키나(<이니셜 D의 주무대 고갯길)’라고 할까. 코너마다 스키드마크가 도로에 수묵화처럼 난을 수없이 그려놨다. 비가 내리기에 빨리 달릴 수는 없다. 보통 비오는 날에 굳이 굽잇길을 달리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마른 노면보다 위험할 수밖에 없잖나.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아우디의 사륜구동 콰트로. 굳이 달리지 않지만 달려야 한다면 콰트로가 적용된 모델이 더 믿음직하다. 무엇보다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닌 즐기는 수준이니까.
주행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꿨다. 변신 완료. 첫 코너를 돌아나가 가속하자마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돌변했다. 패들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니 음색 자체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은은하고 웅장한 소리가 실내를 채웠다면 이젠 날카로운 금속성이 실내를 관통했다. 교양곡에서 헤비메탈로 BGM이 휙, 바뀌는 순간. 그럴수록 RS 5 스포트백은 완전한 스포츠카로서 뾰족한 성격을 드러냈다. 헤비메탈을 들으며 헤드뱅잉하는 기분으로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조작했다. 그럴 때마다 코너는 빠르게 룸미러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RS 5 스포트백은 RS 6 아반트나 RS 7에 비해 순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엔진 회전수가 치솟을수록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강렬함이 터져 나왔다. 상대적으로 더 밀어붙여야 본 모습을 내보인달까. 그 변화가 극적이어서 엔진 회전수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형들에 비해 배기량과 실린더가 적어도 RS배지는 여전히 통용된다.
배후령 고갯길을 내려오니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RS 5 스포트백은 굽잇길에서 아드레날린에 흠뻑 젖게 했다. 알칸타라로 감싼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 땀이 배일 정도로. 빨리 달릴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밀어붙였다. RS 5 스포트백의 기타 속주 같은 사운드가, 그러면서도 강렬하면서도 안정적인 거동이 절로 부추겼다. 드라이브 코스의 하이라이트로 손색없었다. 다시 주행모드를 컴포트로 바꿨다. 이제 이 여운을 즐기며 느긋하게 돌아가면 그뿐이다. RS 5 스포트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진중한 세단의 품을 내어준다. 이런 요물 같으니라고.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