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활 이미지 강한 아우디가 만든 15대의 이색차들
“저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어?” 단정하고 얌전하고 평범한 사람이 파격적이고 활달한 모습을 보여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회사 장기자랑이나 회식 자리에서 신입사원이 종종 숨은 끼를 발휘하는 주인공이 된다. 방송 예능 프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모르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자동차 브랜드도 그렇다. 판매하는 차종만 봐서는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아우디 브랜드는 단정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이런 모습이 인기 비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고성능 모델을 보면 힘이 장난이 아니다. 정장에 가려 근육질 몸이 드러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화려한 도심이 주 무대처럼 보이지만, 거칠고 험한 모터스포츠 바닥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닌다. 디자인에 주로 눈이 가지만, 엔지니어를 갈아 넣어 구현한 고급 첨단기술이 가득하다.
아우디는 바른 생활 브랜드 이미지를 풍기지만 별난 시도도 많이 한다. 특히 파격적인 이색차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아우디 브랜드에서 늘 해오던 일이겠지만, 단정한 이미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다. “아우디가 이런 차도 만들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차가 하나둘이 아니다. 역시 자동차 브랜드도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아우디가 만든 15대의 이색차를 모아봤다.
#1. S1 e-트론 콰트로 후니트론 콘셉트카(2021)
모터스포츠와 관련 있는 차처럼 보이지만 정체를 종잡을 수 없다. 이 차는 1980년대 모터스포츠 바닥을 주름잡은 스포츠 콰트로 S1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일반 경주차는 아니다. 켄 블락을 위해 만들었다. 짐카나의 화신인 그 켄 블락이 맞다. e-트론에서 짐작하듯 전기모터 두 개를 달아 680마력을 내는 전기차다. ‘S1 + 켄 블락 + 전기차’ 이 세 가지 조합만으로도 이색차의 끝판왕 자리에 오를 만하다.
#2. AI:트레일 콰트로 콘셉트카(2019)
아우디는 미래를 보여주는 차를 201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4종 선보였다. AI:트레일도 그중 하나다.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살아갈 때 필요한 차처럼 보인다. 생김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프로드에 특화한 자동차다. 지상고 34cm, 가변 타이어 공기압 조절 시스템, 전기모터 네 개로 구현한 콰트로 등 험로 주파에 적합한 특성을 보였다. 헬리콥터 콕핏이 떠오르는 유리로 두른 외관도 독특하다. 미래 자동차를 지향하는 만큼 레벨 4 자율주행과 전기 구동으로 완성했다.
#3. RSQ e-트론(2019)
자동차이기만 하면 어디에서 달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이 애니메이션 속이라도…. RSQ e-트론은 애니메이션 <스파이 지니어스>(2019)에 나오는 자동차다. 실물은 아예 없고 애니메이션에만 나오는 가상 모델이다. R8과 슈퍼카 콘셉트카 PB18 e-트론을 조합한 형태이고, 기본은 전기차이자 자율주행차다. 아우디에서는 세계를 구할 미래 기술이 다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애니메이션은 잘나가는 스파이 랜스(윌 스미스)가 비둘기로 변한 후, MIT 출신 천재 월터(톰 홀랜드)와 힘을 합쳐 특급 미션을 완수하는 내용이다.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 등 실제 배우의 특성을 잘 살려낸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목소리 연기가 인상 깊다. 스파이 영화에 멋진 차가 빠지지 않듯이, <스파이 지니어스>에도 RSQ e-트론이 주인공의 활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가상의 차 RSQ e-트론은 2021년 현실 속 차로 다시 태어난다. 이름만 같을 뿐 차종과 형태는 완전히 다른 다카르 랠리카 RSQ e-트론이 그 주인공이다.
#4. 루나 콰트로(2015)
지구를 정복했으니 다음은 달 차례? 루나 콰트로는 달 탐사 자동차다. 구글이 후원하는 루나 엑스프라이즈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아우디가 파트타임 사이언티스트와 협업해서 만들었다. 험한 달 표면 상태를 고려해서 콰트로 시스템을 적용했고, 전기모터 네 개를 이용해 시속 3.6km로 이동한다. 자율주행, 경량구조, 태양광 패널 등 달 탐사를 위한 최신 기술을 접목했다.
#5. 어반 콘셉트카(2011)
아우디에서 어린이용 자동차가 나왔나 솔깃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반 콘셉트카는 어엿한 성인용 자동차다. 탑승 인원도 2명이나 된다. 타이어가 밖으로 빠진 구조를 비롯해 전체 형태는 1930년대 아우토우니온 경주차에 기반을 둔다. 도심형 차답게 전기로 구동되고 한번 충전하면 70km 넘게 달린다. 지붕이 있는 모델과 없는 모델로 나뉜다.
#6. RSQ(2004)
영화 <아이, 로봇>에 주인공 윌 스미스가 타는 차로 나왔다. 이미 있던 차를 내보내지 않고 영화를 위해 제작했다. 2004년에 2035년을 배경으로 만든 차다. 도넛 모양 타이어가 없는 독특한 구조인데 공 모양 구로 움직인다. 전체 느낌은 독특해도 전면부에는 아우디인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다. 당시 아우디가 새롭게 미는 싱글 프레임 그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7. 아반티시모 콘셉트카(2001)
아우디는 틈새 모델 개발에 적극적이다. 아반티시모 콘셉트카는 럭셔리 대형 왜건이다. A8의 왜건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왜건 천국 유럽에서도 대형급 왜건은 거의 없다 보니 상당히 독특한 콘셉트다.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아반티시모에는 MMI 시스템을 최초로 선보였고 인테리어 구성이 다른 양산차로 이어졌다. 아우디는 2015년에도 프롤로그 아반트 콘셉트카를 선보이는 등 대형 왜건 개발 의도를 꾸준히 내비치고 있다.
#8. 프로젝트 로제마이어 콘셉트카(2000)
무슨 중세 갑옷을 입은 기사를 보는 듯하다. 자동차라기보다는 예술작품 분위기를 풍긴다. 로제마이어는 콘셉트카 중에서도 순수한 디자인 콘셉트여서 디자인 역량을 강조한다. 현대적인 아우디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 모델이다. 밑바탕은 1930년대 아우토우니온 경주차와 비슷하다. ‘로제마이어’라는 이름은 아우토우니온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이름에서 따왔다.
#9. 아부스 콰트로 콘셉트카(1991)
과거에 독일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했던 아부스 트랙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우디의 소재 기술을 알리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만든 모델이다. 운전석이 앞쪽으로 쏠려 있고 뒤쪽이 상당히 긴 비례를 보이는데, 과거 아우토우니온 시절 유선형 경주차와 비슷한 형태다. 엔진은 W12를 얹어 슈퍼카급 아우디 모델의 등장을 암시했다.
#10. 쿼츠 콘셉트카(1981)
1970년대 유행하던 각진 차체는 1980년대 들어서 조금씩 변형이 이뤄졌다. 쿼츠는 각을 살리면서도 미묘하게 모서리에 부드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알아봤을 텐데, 쿼츠는 아우디 콰트로에 기반을 둔 콘셉트카다.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담당했다. 차체 대부분을 탄소섬유로 만들어서 콰트로보다 무게는 가볍고 성능은 앞선다. 배기구의 4링이 매력 포인트.
#11. 아쏘 디 피크 콘셉트카(1973)
1970년대 유행하던 각진 쐐기형 차체에 아우디도 동참했다. 카르만이 주도하고 이탈디자인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았다. 아우디 80을 기반으로 2+2 쿠페를 완성했다. 요즘 아우디 디자인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실내에는 원통으로 구성한 독특한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돋보인다.
#12. 100 쿠페 S(1969)
이색차라고 하기에는 낯익은 모델이다. 아우디 인기 모델인 A7과 비슷해서 그렇다. 100 쿠페 S는 A7의 원조 모델이다. 반세기 전에 2도어 패스트백 스타일을 선보이며 시대를 앞서갔다. 당시 100은 아우디 모델 중 가장 큰 차였고, 쿠페 S는 브랜드 최고 모델에서 파생된 쿠페형 자동차였다. 요즘으로 따지면 A8 패스트백이 나온 셈이니 이색차 중의 이색차라고 할 수 있다.
#13. DKW 몬자(1955)
아우토우니온의 일원인 데카베(DKW)에서 나온 몬자는 경량 플라스틱 차체를 이용해 만든 모델이다. 몬자 서킷에서 다섯 번이나 속도 기록을 경신한 차다. 3기통 0.9L 2행정 엔진을 얹었고, 무게는 780kg에 불과하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우디에 이런 차가 존재했나 싶은 모델인데, TT의 조상뻘 되는 차라고 볼 수 있다.
#14. 아우토우니온 타입 C 스트림라인(1930년대)
지금 나와도 옛날 차처럼 보이지 않을 모델이다. 1930년대 중반 아우토우니온 타입 C에 기반한 유선형 경주차와 속도기록차가 선보였다. 유선형에 전념해서 극단적인 곡면으로 완성했다. 타이어까지 막아버린 구조가 독특하다.
#15. 타입 K 스트림라인(1923)
1920년대 초 공학자 폴 야레이는 자동차에 유선형을 도입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독일 코치빌더 글래저는 야레이의 기술에 근거해 아우디 타입 K 섀시에 알루미늄 보디를 씌운 유선형 테스트 자동차를 만들었다. 양산하기에는 실용성이 떨어져서 테스트 자동차에 그쳤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