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Q4 e-트론, 전기차의 성지에서 BMW iX를 제치다
‘자동차의 나라’라고 하면 꼭 언급되는 나라 중 하나가 미국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자동차 역사는 미국을 거치며 대중적으로 꽃을 피웠고,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많은 자동차 문화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은 자동차 기업이 가장 공을 들이는 시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성공하는 것이 곧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판매량만 놓고 보면 중국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지난해 2,600만 대 이상 신차가 판매된 곳이다. 단일 시장으로 이만큼 팔리는 곳은 중국뿐이다. 유럽도 5억 명이 생활하고 있고 유수한 자동차 기업의 뿌리인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그런데 전기차가 세계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새롭게 관심을 받는 곳이 있다. 바로 노르웨이다.
인구 537만 명이 조금 넘는 노르웨이는 연간 신차 판매량이 아무리 많아도 20만 대를 넘지 않는다. 규모만 보면 앞서 소개한 나라들과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전기차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노르웨이를 ‘전기차의 수도’, ‘전기차의 성지’, ‘전기차 바로미터’ 등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이 나라의 독특한 상황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와 의회는 2016년 역사적 합의를 했다. 2025년부터 엔진이 들어간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유럽 곳곳에서 전기차 시대로 가겠다는 선언이 나오고 있는데 그 시작점이 노르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곳의 전기차 상황은 어떤가? 노르웨이 정부에 따르면 2022년 1월 자국에서 판매된 신차의 약 84%가 전기차다. 총 7,959대가 팔렸고 그중 6,659대가 전기차였다. 압도적 비율이다.
지난해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65%였는데 2022년 시작부터 전년 기록을 크게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2025년에 다다르기 전에 노르웨이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더는 판매되지 않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작은 시장의 선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언론 또한 어떤 브랜드, 어떤 전기차가 노르웨이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수시로 전하고 있다.
이처럼 상징성이 강한 노르웨이 시장에서 아우디 e-트론은 큰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e-트론이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2020년, 연간 신차 판매율 1위를 달리고 있던 테슬라 모델3를 2위로 밀어내고 9,227대가 팔린 e-트론이 그해 1위에 올랐다. 모델3와는 약 2,000대 가까운 판매량 차이를 보였다.
이 결과를 단순히 신차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1억 전후 고가의 전기차가 호기심만으로 시장에서 판매 1위에 오를 수는 없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 제품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이런 기록은 나올 수 없다. 특히 2020년은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긴 해였다. 노르웨이에서 처음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그런 해에 e-트론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2022년 1월, 아우디 콤팩트 전기 SUV Q4 e-트론이 또 한 번 일을 냈다. 노르웨이 도로교통정보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총 643대가 팔리며 월간 판매량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현대 아이오닉5가 477대, BMW iX가 444대 팔리며 뒤를 이었다. Q4 e-트론의 판매량 643대는 자국인 독일에서 같은 달 팔린 637대보다 많은 수치다.
Q4 e-트론의 선전으로 아우디 브랜드 역시 노르웨이 2022년 1월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판매된 숫자만 놓고 보면 작은 시장임엔 분명하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전기차 성지로 불리며 치열하게 판매 경쟁을 벌이는 노르웨이에서 거둔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상위 모델 e-트론과 실용성을 강조한 Q4 e-트론 등이 모두 노르웨이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음으로써 아우디 전기차 전망을 밝게 했다.
Q4 e-트론은 등장과 함께 넉넉한 공간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동급의 웬만한 경쟁 SUV들과 비교해도 더 넉넉하다. 미리 시승하고 테스트한 전문 매체들은 고객들이 충분히 실내 디자인이나 구성에 대해 만족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우디 특유의 고급스러운 실내 품질과 마감 능력이 Q4 e-트론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들은 안락하면서도 동시에 스포티한 운전 능력을 보이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전비 운전을 할 경우 공인된 것과 비슷하게 485km까지 충전한 후 달릴 수 있었고, 비교적 쌀쌀한 11월 Q4 e-트론을 타고 독일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스위스까지 달린 한 매체의 기자는 전기차에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400km를 훌쩍 넘는 전비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외관 디자인이나 일부 성능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품질 콤팩트 전기 SUV가 아우디에서 나왔다는 평가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독일의 몇몇 자동차 매체들은 실용성에 방점을 둔 운전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프리미엄급 모델이라고 평했으며, 이런 예상은 노르웨이 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우디가 그간 e-트론과 e-트론 GT와 같은 고급 전기차들로 인기를 끌었다면 이번에는 Q4 e-트론이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담 없이 실용적으로 탈 수 있으면서도 아우디 특유의 완성도와 세련된 분위기가 살아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균형 잡힌 전기 SUV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