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의 고성능 서열 재정립한 e-트론 GT와 RS e-트론 GT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말이다. 사람의 첫인상은 3초 만에 결정된다고 하지 않은가. 자동차를 3초 만에 파악할 순 없지만, 짧은 시간에도 강렬하게 전달하는 경우는 분명 있다. 3분을 타든, 30분을 타든, 3시간을 타든 짜릿한 감각은 변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다시 또 타고 싶어지는 자동차인가 아닌가. 수많은 자동차를 경험하다 보면 몸이 알아챈다.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쌓인 경험의 통계적 반응이다. 개인 취향을 떠나 끌리게 하는 요소가 몸을 자극한다. 그런 자동차는 몸이 반응한다.
아우디 e-트론 GT와 RS e-트론 GT를 번갈아 타며 짐카나 코스를 돌았다. 단 몇 분뿐이었지만, 단 몇 분만으로도 특별한 감각을 몸에 새기기에 충분했다. 짐카나는 가속과 조향, 제동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최대한 빨리 달리려고 노력하니 두 대 탄 시간을 합쳐도 노래 한 곡 재생하는 것보다 짧다. 반면 제약 없이 몰아붙이기에 찰나의 감각이 오롯이 퍼진다. 고성능 전기모터를 품은 매끈한 그란 투리스모와 열정적인 짧은 춤을 췄달까. 춤을 끝내자마자 바로 다음 만남을 기대했다. 엄밀히 말하면 춤을 끝내야 하는 것부터 아쉬웠다.
첫 번째 상대는 RS e-트론 GT다. RS가 붙은 만큼 강력한 성능을 뽐낸다. 부스트 모드를 사용하면 최고출력 646마력을 뿜어낸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와 딱 성능 수준이 겹친다. 천천히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출발선에 섰다. 론치 컨트롤로 출발하기로 했다. 부스트 모드로 온전한 최고출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짐카나라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은 채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계기반에서 엔진 회전수 대신 출력 회전계의 눈금이 100%로 치닫고 깜박였다. 창밖에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왼발을 떼는 순간, 고개가 뒤로 꺾이며 헤드레스트에 밀착됐다. 동시에 위이잉, 전기차 특유의 소리가 들리며 시공간이 압축됐다. 무지막지한 가속력. 감탄사를 내뱉을 사이도 없이 바로 제동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유턴하듯 회전하면서 그제야 참은 숨을 내쉬었다. 가속과 감속, 곧바로 회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운전자인 나만 흥분했다. RS e-트론 GT는 허둥대거나 조급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가속과 감속, 회전처럼 지면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치솟는 엔진음이 없어서 더.
왼발을 떼는 순간, 고개가 뒤로 꺾이며 헤드레스트에 밀착됐다. 동시에 위이잉, 전기차 특유의 소리가 들리며 시공간이 압축됐다. 무지막지한 가속력. 감탄사를 내뱉을 사이도 없이 바로 제동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유턴하듯 회전하면서 그제야 참은 숨을 내쉬었다. 가속과 감속, 곧바로 회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운전자인 나만 흥분했다. RS e-트론 GT는 허둥대거나 조급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가속과 감속, 회전처럼 지면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치솟는 엔진음이 없어서 더.
다음 코스는 열 맞춰 선 러버콘이 기다렸다. 탱고 스텝처럼 좌우로 바쁘게 스티어링 휠을 돌려야 했다. 슬라럼 구간에선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가 중요하다. 너무 과하면 최단거리가 흐트러지고, 적으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아뿔싸, 너무 과했다. 전기차의 즉각적인 토크를 감안하지 못했다. 내연기관 자동차로 슬라럼을 통과할 때처럼 가속페달을 밟으니 궤적이 엉망이 됐다. RS e-트론 GT는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84.7kg·m라는 가공할 토크는 순간 이동처럼 차를 움직였다. 그에 반해 내 조향은 반 박자 늦었다. 제대로 눈인사도 못 하고 내달린 결과였다. RS e-트론 GT는 힘이 넘쳤고, 내 몸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모델과 호흡을 맞춘 결과였다.
한 가지 절로 파악한 점은 있었다. RS e-트론 GT는 RS 라인업 중에서도 정점을 노릴 만한 성능이라는 점. 아우디에서 상징적인 고성능 모델인 R8보다 직선에서 더 빠르다니 어련할까.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RS e-트론 GT는 몸으로 느끼게 했다. 고작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우사인 볼트가 100m 신기록을 세우는 광경을 봤을 때처럼 멍한 표정으로 RS e-트론 GT에서 내렸다. 인상적이었다.
곧바로 e-트론 GT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더 괜찮은 라인을 그릴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겼다. 일단 코스를 한 번 경험했다. 고성능 전기차의 비상식적 순발력도 몸으로 느껴봤다. 찰나처럼 지나갔어도 그 경험 덕분에 가속페달의 감각을 염두에 두고 달릴 수 있다. 게다가 e-트론 GT는 상대적으로 RS e-트론보다는 순하다. 최고출력이 116마력 적은 530마력(부스트 모드 시), 최대토크도 19.4kg·m 적은 65.3kg·m이다. 물론 숫자만 보면 e-트론 GT도 긴장할 만한 고성능이다. 그래도 곧바로 바꿔타기에 괜히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론치 콘트롤. e-트론 GT는 초록색 게이지가 원형계 테두리를 채우더니 빛나면서 론치 컨트롤 준비 상태를 알렸다. 출발 신호와 함께 왼발을 떼고 발진. 한 번 경험했다고 감각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지면을 움켜쥐며 튀어나가는 솜씨가 안정적이었다. 전날 비도 내렸고, 기온도 낮았다. 노면 상태가 달리기에 완벽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롤러코스터에 결착된 레일처럼 흐트러지지 않고 튀어나갔다. 시공간을 접고 달리는 감각이었다. 선명하게 전해졌다.
슬라럼 구간에서도 한층 명료하게 전해졌다. 좌우로 급작스럽게 흔들고 밀어붙여도 차체는 요동치지 않고 받아냈다. 마지막 러버콘을 지나면서 가속페달을 과하게 밟았다. 토크는 언제든 즉각적이었다. 아직도 가속페달을 조작하는 데 능숙하지 못했다. 타이어가 그립을 잃나 싶었는데 이내 그립을 되찾았다. e-트론 GT는 시침 뚝 떼고 자세를 유지했다. 전자식 콰트로의 힘이었다. 기계식 콰트로보다 구동 속도가 5배 빠르다고 했다. 민첩하고 안정적이었다.
믿는 구석이 생기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다. e-트론 GT의 능력치를 믿고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물론 와락, 덮치는 토크를 섬세하게 조율할 오른발에는 신경 쓰면서. 그러자 e-트론 GT는 한결 가볍게 움직였다. 이제 조금 호흡을 맞출 감각이 생겼다. e-트론 GT가 강력한 만큼 난 섬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코스에 이상적인 궤적을 그릴 수 있었다.
마지막 가속 구간에서 다시 힘을, 급제동 구간에서 다시 차체 안정성을 느끼며 짐카나 코스를 끝냈다. 몇 번 흥분해 궤적이 흐트러지긴 해지만, 제법 잘 깔끔했다. e-트론 GT와 괜찮은 호흡으로 춤춘 듯한 쾌감이 스쳤다. 열정적이지만 매끄러웠다. 짐카나 기록도 첫 번째보다는 일취월장했다.
다시 RS e-트론 GT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더 강력한 출력을 더 정갈하게 부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짧기에 더 강렬할 수밖에 없는 만남이었다. 내리는 순간 다음을 고대하게 하는 만남이었다. 다음에는 느긋하게 산보하듯 같이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강력한 힘은 충분히 체험했다. 일상에서 그 힘이 어떤 풍요로운 감각을 선사할지 궁금했다. 그때는 e-트론 GT와 RS e-트론 GT의 안팎 질감까지 음미하면서 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란 투리스모는 그렇게 타야 제맛이기도 하니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