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디가 꿈을 실현하는 길 – 스카이스피어 컨셉트 2021
‘꿈이 현실로’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는 아예 상상할 수도 없었거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자동차 세계에서는 지금이 그 언저리에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자동차(自動車)’라는 말이 절반만 실현되었다. 끄는 말이 없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실현되었지만 충직한 말은 잠든 주인을 집으로 스스로 모셔다드리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꿈이 가까이 오고 있다. 스스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으며, 조용하고 매끈하게 전기로 움직일 수 있는 미래차에 대한 꿈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미래차에 대해 꾸는 꿈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방향성은 뚜렷하다. 실용적인 차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미래에는 스스로 사고를 막아주는 영리함이 있으면서도 연료비나 정비비 등 유지비가 덜 드는 차를 원할 것이고 굳이 목돈을 들여 차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내가 필요할 때 내 앞에 딱 나타나 주는 영리한 스마트 모빌리티 공유 플랫폼을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아우디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미래차라면 어떨까? 아마도 그들의 목표는 한 마디로 ‘빠르면서도 안락한 차’일 것이다.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자율주행차는 공유 플랫폼도 고려하겠지만, 무엇보다 고객의 안락함과 안전함을 목표로 삼고 매진한다.
아우디가 지난 8월 미국 페블비치에서 열린 몬터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에서 공개한 컨셉트 카인 스카이스피어 컨셉트(Skysphere concept)는 프리미엄 시장이 원하는 미래차의 모습을 또렷하게 형상화했다. 이후에 공개된 그랜드스피어 컨셉트가 대형 4도어 세단의 여유로움에 더 집중했다면 대형 2도어 로드스터인 스카이스피어 컨셉트는 다이내믹한 면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안락함에서는 두 모델이 공통점을 갖는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가 빠르다’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담긴다. 직선 도로에서 고속 순항성이 좋은 차도 빠른 차이고 코너를 빠른 속도로 주파할 수 있는 코너링 성능을 가진 차도 빠른 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함께 갖추기는 쉽지 않다. 직진 안정성은 코너링 응답성을 희생하며 날카로운 코너링 감각은 직진 안정성을 그 대가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콰트로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돌파구를 만들었던 아우디는 이번에도 근본적 방법으로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린다. 그 해결책은 바로 가변 휠 베이스 시스템이다. 무려 250mm나 조절되는 스카이스피어의 휠 베이스는 A8 롱 휠베이스 모델의 고속 순항성과 RS 5의 날카로운 핸들링을 글자 그대로 한 차체에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가지 모드의 성격은 정확하게 구분된다. 운전자가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스포츠 모드에서는 휠 베이스가 단축된다. 이와 동시에 차체 길이도 함께 4.94m로 줄어들면서 드라이버를 위한 콕핏이 완성된다. 또한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으로 제어되는 후륜 조향 시스템은 결코 작지 않은 몸체를 지닌 스카이스피어의 코너링 응답성을 극대화하도록 설정된다.
반대로 휠 베이스가 250mm 길어진 차체 길이 5.19m의 그랜드 투어링 모드에서는 주변 풍경과 하늘을 만끽할 수 있는 그랜드 투어러의 안락함을 극대화한다. 여기서 집중할 기술적 요소 두 가지는 운전자의 탑승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가변 휠 베이스 시스템과 레벨 4의 자율 주행 시스템이다.
가변 휠 베이스 시스템에서 변경되는 부분은 본네트 뒤의 격벽과 로커 패널을 잇는 차체 앞부분이다. 즉, 휠 베이스가 길어지면 격벽에 붙어 있는 대시 보드와 센터 콘솔 앞부분까지 모두 운전자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바닥의 페달과 운전자 앞의 스티어링 휠은 사라지고 돌출부가 없는 매끈하고 넓은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레벨 4 자율 주행 덕분에 가능한 공간의 변신이다. 그리고 3 챔버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이 제공하는 부드러운 승차감과 매끄러운 주행 질감은 장거리 여행의 즐거움을 완성한다.
이전에도 휠 베이스를 변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들은 있었다. 하지만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에서는 이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구동계가 앞뒤로 차체를 관통하는 FR이나 4륜 구동 방식의 경우는 물론이고 FF나 RR 방식에서도 냉각 및 연료 계통을 연결하는 파이프 등 물리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뒤의 구동 장치가 별도의 모듈로 구성되는 전기차에서는 휠 베이스의 변경이 불가능한꿈이 아니며, 자율 주행과 함께 적용돼 효용성을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스카이스피어 컨셉트가 입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스카이스피어와 차체의 길이와 폭이 비슷한 호르히 853 로드스터(Horch 853 roadster)도 럭셔리 로드스터의 전성시대였던 1930년대에 안락함과 다이내믹한 조종 성능을 모두 갖춘 럭셔리 로드스터를 꿈꿨었다.
그리고 호르히 853 로드스터 이후 90년이 지나 등장한 스카이스피어 컨셉트는 이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닌 세상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꿈이 현실로’ 이젠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