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본정신은 ‘속도에 대한 열망’…아우디 RS의 뿌리를 찾아서
지난 8월 초, 고성능 콤팩트 세단 아우디 RS 3가 녹색지옥으로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서킷에서 소형차로는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다. 르노 메간 RS 트로피-R이 가지고 있던 7분 40초 10의 기록을 7분 40초 748이라는 새로운 기록으로 깬 것이다.
시간만 놓고 보면 차이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보다 더 늘어난 서킷에서 만든 결과라는 점에서 박수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존 길이의 서킷(20.6km) 위를 RS 3 세단이 달렸다면 기록은 7분 35초 389로 5초 이상 당긴 것이 된다.
경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낸 이번 결과 뒤엔 많은 기술적 노력이 숨어 있다. 강력한 내구성은 물론, 처음으로 적용한 토크 스플리터(뒷바퀴의 토크 값을 완벽하게 조정 가능하게 분배하는 기술) 등이 아우디 특유의 5기통 2.5리터 엔진과 최상의 조합을 이뤘다.
이번 결과를 놓고 아우디를 다시 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우디를 스타일 좋은 고급 세단 만드는 브랜드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우디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 브랜드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우디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은 바로 속도, 스피드에 대한 열망이다.
◆ 벤츠와는 생각이 달랐던 아우디 창업자
아우디 역사는 아우구스트 호르히라는 엔지니어로부터 시작된다.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대장간에서 일하며 자전거 등을 만들던 손재주는 그 이상의 것을 갈망했고, 자동차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기계 제작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던 그는 1896년 칼 벤츠 공장에 엔지니어로 취직한다.
하지만 들어간 지 3년 만에 공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칼 벤츠와 자동차에 대한 기본 철학에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칼 벤츠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반대로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속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결국 생각을 같이하는 투자자와 함께 호르히라는 이름의 자동차 회사를 만든 게 아우디의 시작이다.
1차 대전 이후 4개의 자동차 회사가 ‘아우토우니온’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게 되었고, 그렇게 아우디는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큰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한다. 하지만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직접 자동차를 몰고 경주에 출전하는 등, 더 빠르고 더 강한 차를 향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창업자의 열정은 ‘질버파일’(은빛화살) 시대에 꽃을 피운다.
독일어 질버파일(Silberfeil)은 영어로는 실버애로우(Silverarrow), 한국어로는 은빛화살을 뜻한다. 히틀러가 지배하던 시절, 정확하게는 1933년부터 2차 세계 대전이 터진 1939년까지 자동차 경주대회를 휩쓴 아우토우니온과 메르세데스 다임러 경주차들을 일컫는다. 아우토우니온은 이 기간 동안 타입 A부터 D까지, 4가지 모델을 만들었고 6년간 24번의 그랑프리 우승, 18번의 산악 레이스 우승컵을 차지했다.
은빛화살들이 트랙을 질주하는 동안 아우토우니온은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을 하고 있었다. 바로 공공도로 최고 속도 기록에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공공도로 시속 400km의 벽을 가장 먼저 깬 브랜드가 됐다. 아우토우니온 대표 레이서이자 당시 독일 최고의 인기 스포츠 선수였던 베른트 로제마이어는 1937년 시속 406.32km로 최초로 400km/h의 벽을 허물었다. 다임러와의 치열한 속도 경쟁에서 얻은 타이틀이었다.
두 브랜드의 경쟁은 치열했고, 1938년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표 레이서 루돌프 카라치올라가 시속 432.7km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역시 기록에 도전 중인 베른트 로제마이어도 현장에 있었다. 로제마이어는 두 번째 도전에서 시속 429.9km까지 속도를 끌어 올렸다. 그는 마지막 도전에서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베른트 로제마이어는 아우토반 옆 숲속에서 불어온 강한 바람을 알지 못했다. 로제마이어를 태운 레코드카가 시속 430km를 넘어서려는 순간 강풍에 중심을 잃었다. 비극으로 끝난 도전에 모두가 슬퍼했다. 하지만 아우디의 도전은 이 슬픔을 극복한 채 계속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것이 변했지만 속도를 향한 열정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아우디의 이런 열정을 세상에 알린 것은 르망 24 레이스였다.
◆ 13번의 우승과 397랩
1980년대 들어서며 아우디는 세계 랠리 선수권대회(WR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스무 차례 이상의 그랑프리 우승, 그리고 1983년과 1984년 연속으로 종합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한 미셸 무통과 같은 여성 레이서는 미국 파이크스 피크를 달리는 산악 경주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우디의 이름을 빛낸 것은 르망에서의 성공이었다.
1923년 처음 시작된 르망 24 레이스는 말 그대로 24시간을 꼬박 달리는 경주 대회다. 약 13.6km 구간의 서킷을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달린 팀에게 우승컵이 돌아간다. 3명의 레이서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경주차의 내구성, 레이서의 집중력과 체력, 그리고 주행 관련 기술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우디는 이 잔혹한 내구 레이스에 1999년부터 출전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R8 프로토타입 3대가 1~3위를 차지한다. 2001년 우승 당시 악천후를 뚫고 달린 경주용 차에는 직분사 엔진 TFSI가 처음 장착되었는데, 이 뛰어난 엔진은 다음 해까지 우승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처럼 3년 연속 우승(해트트릭으로 불리는)을 차지하며 아우디는 르망 24 레이스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트로피 주인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디젤 엔진 TDI를 달고 아우디팀은 다시 우승 역사를 이어갔다. 특히 1위부터 3위까지 아우디팀이 휩쓴 2010년도 경기에서는 397랩이라는, 압도적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397랩(5410.713km)은 4위를 차지한 팀보다 무려 28랩 더 많은 것이었다.
2016년, 13회 우승이라는 뛰어난 기록을 남기고 아우디는 르망 24 레이스와 작별을 고한다. 그런 아우디가 2023년부터 다시 르망 24 레이스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전기구동 스포츠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과거 영광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기차로 사막을 달리겠다고 선언했다.
◆ 전기차 시대에도 아우디의 달리기 도전은 계속된다
아우디는 2022년 시작과 함께 사막과 오지를 달리는 극강의 경주대회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것도 전기차(RS Q e-트론)를 가지고 말이다. RS Q e-트론은 이미 르망 24 내구레이스 등에서 검증받은 아우디 기술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또한 내구성 외에도 완충 후 800km까지 달릴 수 있다는 배터리 기술도 관심을 끈다.
이처럼 아우디는 전기구동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가장 전통적인 레이스 대회인 르망 24와 다카르 랠리를 통해 검증받으려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질주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도전이다. 그런 점에서 창업자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가졌던 속도를 향한 열정은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RS로 이어가는 아우디의 근본 철학이 먼 미래까지 계속되길 응원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