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림방식의 한계 타파, 아우디 RS 토크 스플리터
"굴림방식에 무관하게 다양한 차체 움직임을 유도해 극한 재미를 추구한다"
4족이냐 2족이냐? 네 발로 걷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두 발로 걷는다. 포유류 중에서는 유일하게 인간이 완전하게 두 발로 걷는다. 팔까지 다리로 친다면 인간도 네 발이 되겠지만, 땅에 닿는 부분만 따진다면 두 발이다. 동물의 4족 보행과 인간의 2족 보행은 차이가 있다. 4족 보행이 편하고 안정적이고 달릴 때 속도를 빠르게 낼 수 있다. 단점이라면 눈과 지면의 거리가 가까워 시야 확보에 불리하다. 2족 보행은 공기저항이 크고 안정성이 떨어지고 속도를 내기 힘들다. 대신 시야가 넓고 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지만, 움직임의 안정성 면에서는 4족 보행이 앞선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의 발도 알고 보면 네 발로 걷는 구조다. 발바닥을 보면 가운데가 움푹 파인 아치형이다. 아치형 구조의 장점은 하중을 분산해 충격을 덜 받도록 한다. 인체 표면적의 2%밖에 되지 않는 발바닥이 무거운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최적의 해법이다. 발바닥이 아치형 구조여서, 가운데 부분은 땅에 닿지 않고 앞꿈치와 뒤꿈치가 지면에 딛는 포인트 역할을 한다. 발 하나에 다리가 두 개 달린 셈이다. 양쪽 발바닥의 앞뒤 부분이 딛는 순서를 보면 네 발 달린 동물과 원리가 비슷하다. 결국 안정성의 기본 원리는 네 발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 넉넉함과 다양한 공간 활용
자동차도 네 바퀴 모두를 완벽하게 활용하기 위한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안정성뿐만 아니라 매끄러운 움직임과 정교한 제어 등 차의 운동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네 바퀴를 효과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대표 기술은 네바퀴굴림이다. 고성능 모델이 늘어나고 일반차의 출력도 높아지면서 안정성을 위해 네바퀴굴림 수요가 늘고 있다. ‘운전의 재미’ 개념이 평범한 다수가 즐길 수 있는 ‘안전한 고성능’으로 변하면서 안정성 높은 네바퀴굴림이 진가를 인정받는다.
네바퀴굴림에 특화된 브랜드는 아우디다. 네바퀴굴림이 험로를 주로 달리는 SUV를 위한 장비라고 인식하던 시절에 납작한 세단형 자동차에 네바퀴굴림을 도입했다. 네바퀴굴림을 ‘콰트로’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하고, 특별한 옵션이 아닌 일상 장비화 했다. 콰트로 시스템은 세대를 이어가며 발전했고, 차종과 성능에 따라 세분되어 최적의 효과를 낸다.
토크벡터링은 각 바퀴에 전달되는 토크를 조절해 코너링할 때 속도를 높이고 정밀도를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네바퀴굴림이 앞뒤로 힘을 배분한다면 토크벡터링은 좌우로 나눈다고 보면 된다. 특별한 장치를 이용해 전달하거나 브레이크를 제어해 회전을 줄이는 방식으로 토크를 조절한다. 전기모터로 달리는 전기차는 모터 회전력을 제어해 토크벡터링을 구현하기도 한다.
아우디의 최신판 토크벡터링 기술은 RS 토크 스플리터다. 뒷바퀴 사이에 능동적이고 완전한 가변 토크벡터링을 구현한다. 리어 액슬 디퍼렌셜이나 이전의 리어 액슬에 사용한 다판 클러치 패키지와 달리 각각 드라이브 샤프트에 전자 제어식 다판 디스크 클러치를 배치했다. 역동적인 주행을 할 때는 부하가 많이 걸리는 바깥쪽 뒷바퀴에 토크를 늘려 언더스티어를 감소하는 효과를 낸다. 오른쪽으로 굽은 커브를 지날 때는 왼쪽 뒷바퀴, 왼쪽으로 굽은 커브에서는 오른쪽 뒷바퀴에 토크가 전달된다. 직진으로 주행할 때는 양쪽 모두에 토크를 보낸다. 모든 엔진의 힘을 뒷바퀴 하나에 몰아서 드리프트 제어도 가능하게 한다. 이때 전달 토크는 최대 178.7kg・m에 이른다.
추진력 차이로 인해 커브에서 잘 돌아나가고 스티어링 각도를 정교하게 맞춰나간다. 언더스티어는 줄어들고 코너에서 탈출할 때 빠르게 가속할 수 있다. 핸들링은 정교하고 재빠르게 이뤄진다. 커브 안쪽에 놓인 바퀴, 또는 필요할 때 두 바퀴에 토크를 직접 보내 오버스티어를 바로잡는다.
정확한 토크 배분은 아우디 드라이브 셀렉트에 따라 달라진다. 다판 클러치 두 개는 각각 자체 컨트롤 유닛에 의해 작동하고, 전자식 안정화 컨트롤 센서로 휠 속도를 감지한다. 이밖에 횡/종방향 가속, 스티어링 각도, 가속페달 위치, 맞물린 기어, 요(yaw) 각도 등을 고려해 반영한다. 토크 스플리터 특성은 아우디 드라이브 셀렉트에 따라 달라져서 핸들링에도 영향을 미친다. 컴포트/이피션시, 오토, 다이내믹, RS 퍼포먼스, RS 토크 리어 5개로 구분해 특성을 달리한다. 컴포트/이피션시에서는 엔진의 토크를 네 바퀴에 배분하되 앞바퀴를 우선한다. 오토에서는 토크가 균형을 이뤄 언더스트어도 오버스티어도 아닌 중립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다이내믹에서는 토크를 가능한 뒤쪽으로 보내 역동성을 강화한다.
RS 토크 리어 모드에서는 뒤쪽으로 가는 토크를 더욱 늘려 오버스티어를 유도하고, 상황에 따라 커브에서 뒤쪽 바깥 바퀴에 최대 100% 토크를 보낸다. 운전자는 드리프트를 제어하며 즐길 수 있다. RS 퍼포먼스 모드는 레이스 트랙에서 달릴 때 사용하는 모드다. 토크 스플리터가 언디스터어와 오버스티어를 최소화해 역동적인 주행을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코너 탈출 속도를 향상해 랩타임을 줄인다. 아예 출고 때 피렐리 P 제로 트로페오 R 타이어를 달고 나오는 옵션을 마련해 최적 성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RS 토크 스플리터는 신형 RS 3에 가장 먼저 도입했다. RS 3에 들어가는 직렬 5기통 2.5L 엔진의 최고출력은 400마력이고, 최대토크는 51.0kg・m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3.8초 만에 끝내고, 최고시속은 290km까지 올라간다. 아우디 제품 특성과 수치만 놓고 본다면 ‘강하고 빠르고 안정적인 차’라고 인식할 법한데, RS 토크 스플리터 덕분에 극한 재미까지 더했다.
‘아우디=콰트로’ 이미지가 강해서 안정성을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운전의 재미를 위한 아우디의 특성 변화는 꾸준하게 진행돼왔다. 콰트로의 동력 배분 비율에 뒷바퀴굴림 특성을 반영하고 토크벡터링을 활용해 동력 배분을 좀 더 정교하게 세분화했다. RS 토크 스플리터는 토크벡터링에서 진화해 ‘극한 성능’에 이어 ‘극한 재미’까지 추구한다. RS 3를 시작으로 아우디 고성능 모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짐작할 수 있다.
고성능 자동차나 스포츠카의 굴림방식을 놓고,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 어느 쪽이 우수한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뒷바퀴굴림은 순수성과 재미, 네바퀴굴림은 높은 한계와 안정성을 장점으로 거론한다. 요즘은 고출력을 감당하기 위해 네바퀴굴림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대신 재미를 극대화하는 기술 보완이 이뤄져서 네바퀴굴림을 타면서 뒷바퀴굴림의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RS 토크 스플리터도 그중 하나다. 두 굴림방식의 특성 차이가 옅어지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자동차가 아무리 발전해도 네 바퀴 위에 차체를 얹은 구조는 변함없이 이어진다. 바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운동성능이나 운전의 재미를 위해서는 네 바퀴를 제대로 지배해야 한다. 네바퀴굴림에 도가 튼 아우디도 네 바퀴를 지배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계속해서 내놓는다. RS 토크 스플리터는 굴림방식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네 바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