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판매량으로 증명한 아우디 SUV의 존재가치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아우디의 SUV 라인업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중형급인 D세그먼트 SUV Q5와 준대형급 Q7이 전부였다. 물론 이 두 개 모델의 등장도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결코 빠른 게 아니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시장에서 SUV가 사랑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출발이었다.
▪ 독일 프리미엄 3사 대표 SUV 시작 연도
메르세데스 M-클래스 : 1997년
BMW X5 : 1999년
아우디 Q7 : 2005년
BMW X3 : 2003년
메르세데스 GLK : 2008년
아우디 Q5 : 2008년
그러던 아우디는 2015년 이후 빠르게 SUV 라인업을 늘리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Q2가 나왔다. 이미 해치백 모델 A1을 가지고 있던 아우디는 Q2까지 내놓으며 독일 3사 중 가장 먼저 소형 SUV 시장에 뛰어든 회사가 됐다. Q2는 현재까지도 프리미엄급에서 홀로 질주 중이다. 판매량 경쟁을 펼치는 아우디의 눈에 보이지 않는 효자 모델 중 하나가 바로 Q2라 할 수 있다. 이후 준중형 SUV Q3와 Q7의 쿠페 버전인 Q8이 2018년 등장했고, 최근 Q3 스포츠백까지 출시하며 SUV 라인업은 비로소 구색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아우디가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곳엔 경쟁 브랜드의 대표 모델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콤팩트 SUV의 경우 Q3가 출시되기 10년 전부터 BMW X1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D세그먼트에선 최근 메르세데스 GLC가 압도적 판매량을 자랑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또 준대형급에서는 전통의 강자 X5와 막 나온 2세대 메르세데스 GLE가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어느 하나 만만한 것 없는,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것들이다. 아우디가 이것들과 경쟁에서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아우디가 소형 프리미엄 SUV Q2를 내놓은 시기는 디젤 게이트가 터진 후였다.
게이트 이후 폭스바겐 그룹을 향한 시선은 차가웠다. 아우디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2015년 이후 그룹 모든 브랜드, 거의 전 모델의 판매량이 줄었다. 과연 회복될 수 있을지, 이대로 그룹이 해체되는 건 아닌지, 많은 사람이 비관적으로 미래를 내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SUV 시장에 늦게 뛰어들어 자리 잡기도 빠듯한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지만 아우디의 SUV는 조용히 시장을 넓혀갔다. 잘 버텼고, 꾸준히 판매량이 늘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SUV는 아우디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2020년 1분기 독일의 SUV 판매량은 아우디 SUV의 선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일연방자동차청(KBA)이 발표한 자료에 다르면 아우디가 경쟁 브랜드를 따돌리고 SUV 전체 판매량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모델의 수가 1~2개 적은 가운데 거둔 결과였다.
▪ 2020년 1분기 프리미엄 3사 SUV 독일 판매량
아우디 (총 6개 모델) : 22,578대
BMW (총 7개 모델) : 19,035대
메르세데스 (총 8개 모델) : 17,392대
Q2를 제외한 SUV 세그먼트별 1위 자리는 경쟁 브랜드 차지였지만 아우디 SUV는 전체적으로 골고루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그런데 독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 시장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이 공개한 2020년 EU 1분기 SUV 판매량을 보면 아우디가 모두 70,731대를 팔아 BMW (60,805대)와 메르세데스-벤츠(52,600대)를 앞섰다.
◆ 유럽 판매량을 견인한 아우디 SUV들
이처럼 아우디 SUV가 좋은 결과를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Q2, Q3, 그리고 e-트론의 선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1분기 소형 SUV 부문에서 Q2는 전체 38개 모델 중 판매량에서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저렴한 가격과 경제성, 실용성 등으로 무장한 해당 세그먼트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소형 SUV가 거둔 성적으론 나쁘지 않은 결과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미니 컨트리맨과 판매량을 비교하면 더 선명해진다.
▪2020년 1분기 유럽 Q2 VS 컨트리맨 판매량
아우디 Q2 : 16,931대
미니 컨트리맨 : 11,478대
Q2는 116마력부터 최고 300마력짜리 엔진이 장착된 고성능 모델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또 화려하진 않지만 디자인과 품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등에 업고 유럽 젊은 층과 여성 고객으로부터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앞으로 나올 순수 전기 모델까지 라인업에 포함이 된다면 Q2의 경쟁력은 더 향상될 것이다.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콤팩트 SUV Q3 또한 마찬가지다. 올 1분기 유럽에서 해당 차급 총 32개 모델 중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톱 10 안에서는 볼보 XC40과 함께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늘어난 모델이기도 했다.
▪2020년 1분기 유럽 콤팩트 SUV 판매 TOP 10
1위 : 닛산 캐시카이 (42,691대)
2위 : 폭스바겐 티구안 (42,316대)
3위 : 푸조 3008 (36,787대)
4위 : 토요타 C-HR (28,049대)
5위 : 현대 투산 (24,967대)
6위 : 아우디 Q3 (24,053대)
7위 : 기아 스포티지 (23,015대)
8위 : 오펠 그랜드X (22,651대)
9위 : 볼보 XC40 (22,046대)
10위 : 스코다 카록 (21,864대)
12위 : BMW X1 (20,609대)
18위 : 메르세데스 GLA (8,218대)
20위 : BMW X2 (7,903대)
25위 : 메르세데스 GLB (4,554대)
독일 기준으로 Q3는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기본가는 물론 필요한 옵션들을 넣고 비교해 보았을 때 경쟁 모델들보다 더 비싼 편에 속한다. 심하게는 같은 고급 브랜드 모델과 3천 유로까지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한 부담을 느낄만 하지만 판매량은 가격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Q3가 반짝인기가 아닐 것으로 보는 이유는 신차가 출시되었을 때 그 효과로 판매량이 늘어나는 일명 ‘신차 출시 효과’ 기간을 지났음에도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우디엔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메르세데스가 신형 GLA를 내놓았고, 머지않아 BMW 역시 X1 3세대 모델을 출시하게 된다.
사실 Q2와 Q3의 선전보다 더 놀라운 것은 SUV e-트론의 판매량이다. 1억이 넘는 고가의 전기 SUV가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 순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E세그먼트 SUV들과의 판매 경쟁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 2020년 1분기 유럽 프리미엄 대형 SUV 세그먼트 판매 TOP 10
1위 : BMW X5 (9,819대)
2위 : 메르세데스 GLE (9,562대)
3위 : 아우디 e-트론 (7,987대)
4위 : 볼보 XC90 (6,418대)
5위 : 레인지로버 스포츠 (5,799대)
6위 : 아우디 Q7 (5,085대)
7위 : 포르쉐 카이엔 (4,966대)
8위 : 폭스바겐 투아렉 (4,335대)
9위 : 아우디 Q8 (3,510대)
10위 : 레인지로버 (2,499대)
디젤과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30여 종 이상의 고급 SUV들 속에서 전기 SUV e-트론이 보인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그리고 경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재규어 I-페이스(2,106대)나 테슬라 모델 X(1,227대), 메르세데스 EQC (1,505대) 등의 판매량을 보면 당분간 e-트론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출시가 예정된 아우디 Q4 e-트론을 다크호스로 꼽는데, 이는 e-트론의 선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우디의 SUV 시장 공략은 경쟁 브랜드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소형 SUV부터 전기 SUV까지 모두가 좋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망한 모델, 흥행에 실패한 게 없다는 것은 전략의 승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여기에 더해 몇 년 후 나올 신형 Q5와 Q5 스포츠백(쿠페형) 등 새로운 SUV 출시 소식도 기대를 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우디의 옛 디자인이 여전히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적 취향을 떠나 아우디 SUV가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시장이, 판매량으로 보여줬다. 디젤 게이트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위기의 시기를 아우디 SUV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