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10억 원이 생긴다면 이 석 대의 아우디를 살 거다
"아우디 중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 뭐예요?"
독일에 와서야 비로소 아우디에 눈을 뜬 내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쉽지 않았다. 하나를 선택하자니 다른 모델들이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돌려 답했다. 개인적으로 갖고 싶은 석 대의 모델이 있다고.
◆ 실용주의 멀티 세단의 대명사 ‘A6 올로드 콰트로’
SUV가 득세하는 요즘이지만 오랫동안 유럽은 왜건의 땅이었다. 세단의 안락함, 주행 안전성, 거기에 넉넉한 트렁크 공간까지, 뭐 하나 모자랄 게 없다. 왜건이 못생겼다는 얘기도 이젠 과거의 유물이다. 요즘 나오는 모델들은 하나 같이 좋은 균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비포장도로까지 부담 없이 달리 수 있는 것. 자동차 회사들이 이에 화답했다. “자,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왜건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여기에 담았소”라며 온오프로드 겸용 네바퀴 굴림 왜건을 시장에 내놓았다. 현재 여러 모델이 나와 있지만 역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다.
A6 올로드 콰트로는 1999년 처음 등장했다. 최저 지상고를 높인 덕에 어지간한 자갈길도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다. 세대를 거치며 일반 왜건과 지상고 외에는 큰 차이가 안 보이던 올로드 콰트로의 스타일도 점점 과감해졌다. 지난해 나온 3세대가 그 변화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A6 올로드 콰트로는 세단이지만 SUV의 이미지를 입고 있었다. 절묘한 혼합이었다.
A6 올로드 콰트로 / 사진=아우디 에어서스펜션으로 A6 올로드 콰트로의 지상고는 달리는 도로 상황에 맞춰 높낮이가 조정된다. 아우토반에서 고속 주행을 할 때는 안전성을 위해 차고는 낮아지고, 오프로드에서는 시속 80km/h 이하로 달릴 때 다시 최고 45mm까지 높아진다. 비포장도로 주행 안전성까지 고려해 종횡 방향 경사도까지 알려주며 위기에 미리 대응하게끔 한다.
A6 올로드 콰트로 실내 / 사진=아우디 모델에 따라 리터당 17km까지 달릴 수 있고, 최고 349마력까지 힘을 낼 수 있도록 세팅됐다. 안락함, 실용성, 경제성, 고출력 엔진이 만드는 구동 능력, 여기에 세단보다 높은 지상고에서 얻게 되는 개방감과 승하차의 편의성까지, 장점이 많다. 온오프 겸용 모델은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될 수 있다. 하지만 A6 올로드 콰트로는 어설픈 섞어찌개가 아니다. 최고의 재료를 모아 만든 훌륭한 한정식과 같은 차다.
◆ 아름답게, 경쾌하게, 그리고 강하게 ‘RS 5’
3년 전 운 좋게 바르셀로나에 열린 아우디 A8 론칭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때 정말 많은 아우디 모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자동차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2세대 RS 5였다. 디자인 잘한다는 아우디가 만든 모델 중에서도 내 눈엔 가장 예쁜 차였다.
2세대 RS 5 / 사진=위키피디아, Matti Blume 2010년 처음 등장했으니 그리 역사가 길지는 않다. 1세대는 4.2리터 V8 가솔인 엔진이 들어갔고 2세대부터는 다운사이징된 V6 바이터보 엔진이 장착됐다. 1세대와 2세대 모두 450마력이지만 토크는 1세대가 4~6천rpm에서 430Nm이라면 2세대는 1,900~5,000rpm에서 최대 토크 600Nm(61.2kg.m)가 발휘된다.
한 체급 작은 RS 3 세단과 비교하면 마력과 토크가 더 좋고, 한 체급 위인 RS 7보다 마력과 토크는 부족하나 공차 중량이 300kg 이상 가볍다. 즉, RS 3보다 강하고 RS 7보다 더 민첩하고 경쾌한 주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RS 5는 또한 디자인에서도 어떤 모델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래저래 RS 5 오너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RS 5 2세대가 최근 부분 변경됐다. 이전 모델보다 더 강한 인상이다. 터보블루와 탱고레드라는 새로운 색상도 추가됐다. 또한 운전대에는 주행 모드 선택 버튼이 추가돼 설정을 보다 쉽게 바꿀 수 있다. 왜건인 RS 4 아반트보다 가벼운 덕인지 0-100km/h도 3.9초로 더 빠르다. 여러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난 디자인이 정말 중요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만한 예쁜 고성능 쿠페도 드물다.
◆ 아우디 스포츠 쿠페의 원형 ‘스포츠 콰트로’
상시 사륜구동 승용차의 시작은 아우디가 아니다. 이미 1960년대 등장한 영국 젠슨 FF가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하며 승용차 네바퀴 굴림 시대를 본격화한 공은 아우디에 있다. 과감한 아우디 섀시 엔지니어의 요청을 당시 기술 총괄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수용했고, 결국 극적으로 경영진이 생산을 최종 결정하며 아우디 콰트로는 1980년에 등장했다.
이후 세계 랠리 선수권(WRC)에서 수십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작은 차체에 500마력 수준의 강력한 엔진을 넣은 모델들이 즐비한 세계 랠리 선수권 그룹 B에서 경쟁할 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1984년 등장한 것이 스포츠 콰트로였다.
기존 콰트로보다 차의 길이가 320mm 짧아졌다. 운동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단 200대 이상 생산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맞추기 위해 306마력의 스포츠 콰트로가 만들어졌고, 그룹 B에서 경쟁할 랠리용 스포츠 콰트로 S1의 최고 마력은 450 PS였다. 이후 600마력까지 출력을 높인 S1 E2까지 등장하며 아우디는 자신들의 랠리 역사를 써 내려갔다.
스포츠 콰트로는 변형 모델을 포함 약 220대가 만들어졌으며 이중 랠리용을 제외한 170여 대의 스포츠 콰트로가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갔다. 가격은 당시 독일에서 나온 차들 중 가장 비싼 수준인 20만 마르크에 육박했다. 가장 많이 팔린 건 토네이도 레드였고 그 뒤를 알파인 화이트, 코펜하겔 블루 색상이었다.
생산량이 매우 적었던 탓에 관리가 잘 된 스포츠 콰트로의 거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2010년 20만 유로(한화 약 2억 6천만 원) 수준이었던 게 지난해 클래식카를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42만 유로 이상의 가격에 판매됐다. 소더비 경매에도 등장했는데 그때는 더 비싼 48만 6천 유로였다.
그리고 현재 네덜란드의 한 중고차 딜러가 무려 3개의 오리지널 스포츠 콰트로를 매물로 내놓았다. 모두 5~7만km 정도 달렸고, 가격은 43만 5,000유로에서 49만 9,000유로까지다. 이런 추세라면 10억 원을 넘기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인기가 있다 보니 레플리카로도 판매되고 있다. 독일의 한 튜닝업체가 현재 시세의 1/3 수준에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복제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그것도 원하면 출력을 600마력까지 높여준다고 한다.
화려한 디자인도 아니고 첨단 전자 장치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 콰트로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기계적으로 구성된 야생마와 같다. 온전히 운전자의 의지와 능력에 맞춰 움직여준다. 비록 랠리카는 아닐지라도 초기 콰트로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성능 원조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