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2023 다카르 랠리’가 개막한다. 매회 수많은 볼거리를 낳는,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모터스포츠 중 하나지만 올해는 중요성의 차원이 다르다. 다카르 랠리 사상 처음으로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머신이 출전하기 때문이다. 충전시설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2주간 수천km를 달리는 랠리를 전기차로 출전한다고? 놀라긴 이르다. 이미 연습경기 삼아 참가한 시즌에서 아부다비 데저트 챌린지 종합우승까지 했으니 말이다.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아우디 RS Q e-트론이 이제 화선지 먹물 빨아들이듯 모든 걸 흡수해 2세대 모델을 내놨다. 이전보다 가볍고 공력성능도 월등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린, RS Q e-트론 E2다.
아무리 세대변경이라고 하더라도 이전 모델의 차체 부품을 사용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RS Q e-트론 E2는 RS Q e-트론에 쓰인 패널을 단 한 개도 갖다 쓰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신, 구형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우선 랠리 규정을 충족시키는 범위에서 드라이버의 거주성을 최적화하기 위해 앞뒤 후드를 늘리고 더욱 휘어지게 가다듬었다. 또 루프 쪽으로 오목하게 튀어나왔던 루프라인도 전면수정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중량은 2000kg에서 100kg이 늘었지만 무게 중심은 낮아졌다.
공력성능향상을 위한 작업도 더없이 가혹하게 이뤄졌다. 앞펜더의 절반을 잘라내고 잘 보이지도 않는 앞바퀴 흙받이까지 더 짧게 만들었다. 아우디 내부에선 이 구조를 ‘코끼리 발’이라고 부르는데 경량화와 공기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이다. 전체적으로 RS Q e-트론 E2는 이전보다 공기저항계수가 15% 개선되면서 에너지 소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최고속도는 랠리 규정에 맞춰 170km/h로 변함없다.
RS Q e-트론 E2의 전기 동력계는 엔진과 제너레이터로 구성된 에너지 컨버터와 고전압 배터리, 그리고 앞/뒤 차축에 한 개씩 얹어진 전기 모터로 이뤄진다. 각 동력계 간 에너지 흐름은 에너지 관리시스템이 철저하게 통제하는데 이 또한 더욱 정교해졌다. 특히 아우디는 점프하거나 고르지 않은 지형에서 바퀴가 접지를 잃는 찰나에 발생하는 과잉전력을 다스리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시즌 FIA로부터 페널티를 받았던 바로 그 부분이다
개선된 에너지 관리시스템은 RS Q e-트론 E2의 퍼포먼스만 끌어올리는 게 아니다. 코 드라이버의 쾌적한 주행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사실, 지난 2022시즌에서 아우디 팀은 공조장치 관리에서 손실을 봤다. 예컨대 머신이 최대치의 성능을 내며 수 시간 동안 달리다 보니 냉각수가 얼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보 펌프와 에어컨 쿨링 펌프 그리고 팬의 작동 간격을 조절했다. 또 동력계에 걸리는 부하의 정도에 따라 팬 및 서보 펌프가 다르게 작동하도록 했다. 그 결과 에너지는 절약하면서도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두 명으로 이뤄진 세 팀이 교대로 머신을 운전하는 만큼 사용 편의성 개선 역시 큰 폭으로 이뤄졌다. 머신의 모든 기능을 드라이버가 전부 담당하면 팀을 교대할 때 다가오는 혼란스러움이 큰 폭으로 배가된다고 판단한 아우디는 처음으로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의 조작영역을 정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택했다. 로타리 스위치로 시스템을 스테이지, 로드, 에러, 세팅 영역으로 나눠 조작할 수 있게 한 것.
스테이지에는 스피드 리밋이나 에어잭처럼 운전자가 직접 판단해 직관적으로 재빨리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담았다. 로드 영역도 마찬가지. 방향지시등이나 후방카메라처럼 리에종 구간에 사용할 기능들이 포함된다. 세 번째, 네 번째 영역은 코 드라이버가 더 섬세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을 담았는데 에러 영역에는 머신의 문제점을 찾아내거나 보고하는 기능을, 마지막 세팅 영역은 엔지니어링 팀에 각 시스템의 온도 등을 전달할 때 쓰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집어넣었다.
이외에 RS Q e-트론 E2는 타이어 펑쳐가 났을 때도 더 쉽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로티폼 사에서 새로 개발한 10 스포크 휠이 이전의 투박한 휠을 대신한 덕에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둘만으로도 매우 쉽고 안전하게 교체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20년 말 아우디가 다카르 랠리 참전을 선언한 이후 불과 2년 만에 빚어낸 이 눈부신 결과물을 보며 떠오르는 차가 있다. 바로 1980년대 그룹 B 랠리 참전을 앞두고 최종 담금질에 나섰던 아우디 스포트 콰트로다. 모터스포츠에 언제나 진심이었던 아우디가 6주 앞으로 다가온 2023년 다카르 랠리에서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말 날아오르지 않을까? 아우디도, RS Q e-트론도.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