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on’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색다른 감흥을 느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전기차 이름으로 하이테크 이미지를 강조하거나 매우 간결한 이니셜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강한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tron’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컴퓨터 안으로 전송되어 가상현실 컴퓨터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실제 세계를 위협하려는 디지털 세계의 빌런을 무찌르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영화 <트론>이 떠올랐던 것이다.
영화 <트론>은 컴퓨터 그래픽을 영화에 최초로 도입한 영화다. 즉 영화 기술의 발전에 커다란 이정표가 된 것이다. 영화에게 있어서 컴퓨터 그래픽은 기술 발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표현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영화들이다. 꿈꾸는 것을 모두 그려내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판타지의 세계 말이다.
그래서일까, e-트론은 단순히 아우디의 기술을 자랑하는 모델만은 아닐 거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우디는 e-트론이라는 이름에 무슨 뜻을 담았는지를 찾아봤다. 아우디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e-트론은 전기 구동이 선사하는 달리는 즐거움과 무궁무진한 일상생활에의 효용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은 이랬다. ‘아우디 e-트론은 아우디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이기도 합니다. 아우디 e-트론을 통해 테크놀로지는 실제 제품으로 형상화되었고 또한 모델의 이름 자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랬다. 아우디는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브랜드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테크놀로지를 사랑하는 회사다. 그러니 기술 자체에 매혹당하는 대신 기술을 우리에게 실제 의미가 있는 제품으로 구현하여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열정이 있는 회사다. 그래서 혁명보다 온건하지만 견고한 ‘진보’라는 단어를 슬로건에 담는다.
e-트론을 시작으로 연이어 발표된 아우디의 순수 전기차 라인업은 이런 아우디의 철학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법에 몰두한 아우디 e-트론은 브레이크-바이-와이어라는 세계 최초의 시스템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RS e-트론 GT와 e-트론 GT는 고성능 전기차에게도 단순한 고성능보다는 보다 정교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아우디의 진보 정신이 담겼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Q4 e-트론과 Q4 스포트백 e-트론은 컴팩트 크로스오버 전기차가 담을 수 있는 프리미엄과 다이내믹 이미지의 외연을 넓혔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아우디는 세계의 어느 브랜드보다도 이미 전기차 라인업의 상하 폭과 좌우 캐릭터 넓이에서 가장 광활한 라인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시에 앞서 거론한 세 모델들은 각각 자신에게 알맞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와의 연속성을 잊지 않은 MLB 에보 플랫폼, 궁극의 고성능 J1 플랫폼, 고효율과 확장성의 MEB 플랫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챕터가 다가온다. 그것은 어느새 리프레시와 함께 Q8 e-트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e-트론, 그리고 A6 e-트론을 필두로 새롭고 유연한 프리미엄 전기차를 위한 최신형 플랫폼인 PPE가 소개할 넥스트 제너레이션 e-트론의 등장이다.
이렇듯 아우디가 e-트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전기차 시대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것이 바로 기술을 통한 진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