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는 애초에 석 대의 스피어 콘셉트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네 번째 스피어 콘셉트가 등장을 앞두고 있다. 바로 액티브스피어 콘셉트다. 최종 마무리 단계인 만큼 액티브스피어 콘셉트에 대한 정보는 아직 많지 않다. 공개된 사진도 달랑 한 장뿐이어서 크게 두 가지 정도만 유추할 수 있다. 온로드는 물론이고 오프로드에도 활용할 수 있는 크로스컨트리 성격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SUV이라기보다는 휠하우스에 꽤 틈이 있는 2도어 쿠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정보가 계속 더해지겠지만, 아우디가 그동안 공개할 때마다 화제를 일으킨 스피어 콘셉트 모델 3종을 통해 액티브스피어 콘셉트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가늠해보기로 한다.
먼저 최근에 한국시장에도 첫 선을 보인 어반스피어 콘셉트를 보자. 이 모델은 지난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펼쳐진 아우디 하우스 오브 프로그레스 서울에 실제로 전시돼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또 외장 디자인에 참여한 한국인 박슬아 디자이너가 아우디 최초의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란 점도 의미가 크다.
어반스피어 콘셉트는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길이가 5.51m에 2m가 넘는 폭, 1780mm에 달하는 높이 그리고 휠베이스는 자그마치 3400mm에 달한다. 아우디 플래그십 세단 A8 L의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5320, 1945, 1500mm고 휠베이스는 3128mm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차인지 알 수 있다.
아우디로서는 처음 선보이는 미니밴 콘셉트지만 여러 디자인 요소 덕에 한눈에 아우디라는 걸 알 수 있다. 먼저 아우디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싱글프레임 그릴이 아주 새롭게 진화했다. 여러 가지 색깔을 내는 라이트닝 그릴을 섞었는데 단지 반짝이는 수준이 아니다. 좌우 방향지시등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속할 땐 녹색, 감속할 땐 빨갛게 일렁이는 라이트를 그릴 전체에 드리운다. 이를 통해 주변 자동차는 물론이고 보행자와도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바깥에선 헤드램프, 테일램프와 라이트닝 그릴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한다면, 안에선 사람의 눈빛과 얼굴을 인식해 탑승자를 살피고 의사를 전달한다.
옆에서 보면 중간마다 들어간 라인이 하나도 없어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 같다. 하지만 윈드실드는 굉장히 넓게 누워있어 차가 멈춰있는데도 속도감이 느껴진다. 또 수치정보로 봤을 때보다 휠씬 더 날렵해 보이는데 여기에는 루프라인에 쓰인 팔라듐 라인의 몫이 크다. 윈도우 실에서 시작해 리어 스포일러까지 쭉 이어지는 이 라인은 먼저 공개한 A6 아반트 e-트론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데 차를 실제 수치보다 훨씬 매끈하고 낮아 보이게 한다. 또 전면에서 시작해 하단으로 흐르는 투톤 컬러 역시 차를 실제 크기보다 유려하게 만든다.
어반스피어 콘셉트의 도어는 양옆으로 열리는, 이른바 코치 도어다. 하지만 B필러가 없어 문을 여는 순간 실내는 뻥 뚫린 공간처럼 다가온다. 가장 극적인 것은 도어가 열리면 펼쳐지는 레드 카펫 라이트 콘셉트다. 영화제에서 바닥에 레드카펫을 깔 듯, 빨간 조명을 탑승자 앞에 길게 드리워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좌석은 네 개뿐이다. 이 넓은 공산에 시트를 네 개 뿐이 만들지 않았다니. 하지만 고급 주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빼곡하게 채워진 건 고급 주거공간과는 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시트는 승하차가 편하도록 바깥으로 25도까지 회전하는 가변식이다. 이보다 더한 환대가 있을까?
아, 잠깐. 실내에는 급수대까지 갖췄다. 살짝 입고리가 올라간다. 도대체 이런 황당하지만 쿨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냈을까? 아우디는 틀을 완전히 깨기 위해 자동차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까지 뒤엎었다. 외부형태를 먼저 정하고 내부를 맞추는 기존 방식이 아닌, 실내공간의 특성을 정의한 뒤, 차의 형태를 가다듬었다. 또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하던 콘셉트카 제작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소비자와 소통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품을 만들었다.
하우스 오브 프로그레스 서울 전시를 통해 어반스피어 콘셉트는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 돌아가는 두 대의 콘셉트 카를 아우디는 지난해 8월부터 연거푸 공개했다.
첫 번째는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휠베이스를 최대 250mm까지, 지상고는 최대 10mm까지 늘였다 줄였다 하는 믿기 힘든 기능을 가진 럭셔리 로드스터 스카이스피어 콘셉트다. 전기 모터와 차체 및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조정하는 기술은 자동차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시도다. 4.94m길이의 로드스터를 타다가 순식간에 5.19m짜리 GT를 몰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라니. 과연 양산형 모델에선 어떻게 바뀌고 구현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스카이스피어 콘셉트 전용으로 제작한 여행 가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로부터 딱 한 달 뒤인 9월에는 독일 IAA 모터쇼에서 그랜드스피어 콘셉트를 선보였다. 다음 세대 A8의 디자인과 첨단기술을 짐작할 수 있는 콘셉트 카로 오늘날의 대형세단과는 지향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 2열 탑승객을 중시해 거주성, 편의사양 모두 뒷자리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설룬과는 달리 앞좌석에 초점을 맞췄다. 심지어 4인승이 아니라 2+2 구성이며 2열엔 벤치 시트를 집어넣었다. 버튼 조작만으로 1열 시트는 최대 60도까지 뉘어지고 실내에는 화초나 센트까지 갖춰 전용 비행기의 호화로운 라운지와 다를 게 없다.
아우디가 지금까지 공개한 스피어 콘셉트들은 모두 아우디가 모빌리티 시대로 넘어가며 꿈꾸는 진보는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청사진이다. 스피어란 단어를 이름에 붙인 것부터 아우디가 앞으로 보여줄 미래가 무엇에 초점을 맞췄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운전이 운전의 전부가 아닌 세상 즉, 자동차라는 공간과 영역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이다. ‘저게 과연 실현 가능할까?’ 싶은 차도 기술을 통한 진보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발표하는 아우디의 자신감에 찬사와 기대를 보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