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고성능차를 대표하는 RS6가 탄생 20주년을 맞이했다
자, 고성능 모델을 사야 할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고성능 모델은 스포츠카, 슈퍼카, 일반 자동차의 고성능 변형 모델을 아우른다. 어떤 고성능 모델을 고르겠는가? 여러 가지 선택 구성이 나오겠지만, 개인 취향을 고려하면 크게 납작한 2인승 쿠페형 스포츠카(또는 슈퍼카)와 고성능 변형 모델(이하 고성능차)로 좁아진다. 이 중에서 어떤 차를 고르겠는가?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면 간단하게 끝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좀 더 현실적인 기준을 따져보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수십 가지, 아니 수백 가지일 테니 간단하게 기준을 추려보겠다. 살 수 있는 차는 한 대(현재 차가 있다면 교체), 가족 구성원은 서너 명 정도, 간간이 주변 사람 태울 일도 생기고, 종종 많은 짐을 싣기도 한다. 편파적인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보편적인 현실이다. 이 기준을 고려하면 고성능 변형 모델은 중형급이 알맞고, 스포츠카나 슈퍼카를 상대해야 하니 최고 버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우디 모델 중에는 RS 6 아반트를 꼽을 수 있다.
2인승 쿠페형 슈퍼카와 RS 6 아반트, 어느 차를 고르겠는가? 개인 취향을 무시하고 앞서 정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RS 6가 합리적이다. 아무리 현실적인 조건을 따진다고 해도, ‘스포츠카도 아닌 슈퍼카와 RS 6이 급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성능만 본다면 RS 6도 600마력이어서 슈퍼카와 맞비교할 만하다. 오히려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쿠페형 슈퍼카의 대안 역할을 하기에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종합하면, 아우디 RS 6의 존재 이유는 분명해진다. 올해 RS 6이 탄생 20주년을 맞이하며 4세대에 걸쳐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 온 비결이기도 하다. 단순히 실용적인 고성능차를 원하는 수요층이 있어서 명맥을 유지하지는 않았다. 20년 동안 RS 6는 계속해서 발전하며 고성능차로서 매력을 키워왔다.
RS 6는 2002년에 처음 선보였다. 5세대 A6(C5)에 기반해 나온 모델이 RS 6 1세대다. 당시 아우디 콰트로 부서는 RS 4 이후 내놓을 혁신 모델을 A6로 선정했다. 아우디가 2000~2002년에 걸쳐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챔피언에 오르는 등 모터스포츠를 주름잡던 시절이다(이후에도 르망에서 거의 독주하다시피 다수의 우승을 거둔다). 콰트로 부서는 모터스포츠 기술을 활용해 A6를 스포츠카로 바꿔놓았다.
V8 4.2L 엔진을 얹은 1세대 RS 6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450마력으로 세그먼트 최고 수준이었다. 최대토크도 57.1kg・m나 되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4.7초 만에 가속했다. 코너는 물론 직선로에서 안정성과 역동성을 향상하는 다이내믹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도 새롭게 다시 개발해 적용했다. 모델 주기 후반부에는 출력을 480마력으로 키운 플러스 모델도 나왔다.
2008년 선보인 2세대는 배기량과 실린더 수가 늘어난 V10 5.0L 엔진을 얹는 큰 변화를 거쳤다. 출력은 600마력에 근접한 580마력까지 커졌고 토크도 66.3kg・m로 늘었다. 580마력은 당시 아우디 모델 중에는 가장 강한 출력이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4.5초로 단축되었다. 엔진 변화와 함께 의미 깊은 기록을 세웠는데, 플러스 모델의 최고속도가 시속 300km를 넘어섰다(정확히 303km/h).
3세대는 2013년에 선보였다. 다운사이징 추세를 반영해 배기량과 실린더를 각각 4.0L와 8개로 줄였다. 출력은 560마력으로 낮아졌지만, 토크는 71.4kg・m로 커졌다. 알루미늄 사용을 늘린 덕분에 무게는 120kg이나 줄어서 움직임은 더 가뿐해졌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도 3.9초로 3초대에 진입했다. 강력한 퍼포먼스로 출력과 실린더 수 감소로 인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퍼포먼스 모델은 출력과 토크가 605마력과 76.5kg・m로 커지면서 600마력 시대를 열었고, 배기량과 실린더수에 대한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2019년 4세대는 배기량과 실린더 수를 유지하면서 기본형에서 출력 600마력과 토크 81.6kg・m를 제공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3.6초 만에 끝내고, 시속 200km까지는 12초 만에 도달한다. 이제는 고성능차를 넘어 슈퍼카라고 해도 될 정도다.
RS 6는 대부분 아반트 모델로 나온다. 실용성과 일상성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차의 가치는 결국 고성능차의 본질인 성능에서 좌우된다. 20년 동안 RS 6는 차곡차곡 성능을 키우며 고성능차의 본질을 충실히 지켜오고 강화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 온 또 다른 비결이다.
20년을 이어오면서 RS 6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고성능 모델답게 개발 단계에서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담금질 과정을 거쳤다. 일상성을 중시하는 모델이어서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겨울 테스트를 거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데스밸리 같은 더운 지역도 누볐다. 이탈리아 나르도 시험장과 오스트리아 그로스글로크너 산악도로 등 극한 테스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RS 6 시장 출시 행사는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레이스에서 이뤄졌다. 경기에 앞서 딜러 30명이 RS 6 30대를 몰고 19만4000명에 이르는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1세대 모델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스피드 GT 클래스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첫 시즌에서 랜디 팝스트가 우승했고, 동료 마이클 갈라티는 2위로 들어왔다.
RS 6는 소리를 중시하는 고성능 모델이지만, 불필요한 타이어 소음을 적극적으로 제거한다. 3세대 RS 6에는 처음으로 피렐리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이 달려 나왔다. 타이어가 구를 때 나는 소음을 줄이는데, 타이어 몸체에 폴리우레탄 스펀지를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소음은 물론 진동까지 줄이는 효과를 냈다.
통상 고성능 모델은 일반 모델의 성능을 키운 모델로 인식된다. 엔진 바뀌고, 커진 성능에 맞게 하체 부품 강화하고, 외부에 스타일을 조금 다르게 다듬은 차 정도로 생각한다. RS 6도 그렇다고 여길 법한데, 예상 밖으로 다른 부분이 많다. 현재 4세대 RS 6의 외장 부품에서 일반 A6와 공유하는 부분은 세 가지에 불과하다. 지붕, 앞쪽 도어, 테일게이트다. 화장이 아니라 재창조 수준이어서, 일반 S6와 형태만 비슷할 뿐 거의 새 차나 마찬가지다.
현재 RS 6에는 전용 페인트 색상을 제공하는데, ‘세브링 블랙 크리스털 이펙트’라는 색상도 포함한다. 1세대 RS 6 경주차 버전이 2003년 플로리다 세브링 트랙에 데뷔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아우디 RS 모델 페인트 색상 이름에는 유명한 세계 레이스트랙 이름을 붙인다. RS 6 전용 인테리어 옵션 색상인 코냑 브라운은 인기가 많은데, 한정판인 1세대 RS 6 플러스에 사용한 색을 오마주해 선보였다. 유럽 RS 6 고객의 절반은 견인 히치를 함께 주문한다. RS 6를 실용적인 용도로도 사용한다는 뜻이다.
꾸준하게 유지하는 특성도 있다. 엔진 배기량과 실린더 수는 달라졌지만, 터보차저가 두 개 달린 바이터보 엔진은 1세대부터 꾸준하게 유지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콰트로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다이내믹 라이드 컨트롤 또한 RS 6의 DNA 요소다. 사이드미러 덮개 등 무광 알루미늄 부품은 외부에 RS 6를 특정하는 요소였고, RS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무광 알루미늄에 더해 검은색과 탄소섬유도 고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이어오는 차는 많지만, 틈새 모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RS 6는 아우디 브랜드 내에서 최상위급에 속하는 중요한 모델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틈새 모델이다. 수요층이 변하거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위기에 빠진다. 그렇지만 슈퍼카급 성능을 원하지만 일반 자동차와 다를 바 없는 일상생활의 편의를 누리고자 하는 수요층은 여전하고, 아우디 RS 6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철저하게 만족 시킨다. 덕분에 RS 6는 4세대를 거치면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20주년을 맞이했다. 실용성과 고성능을 동시에 추구하는 고성능차의 본질을 강화하며 ‘실용적인 슈퍼카’ 반열에 올라섰다. 치열한 고성능 모델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이유가 충분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