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가 준비한 ‘다카르 랠리 사냥꾼’, RS Q e-트론 아우디, 전기차 시대로 가는 또 하나의 관문에 도전하다
똑같은 거리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달리는 기록경기를 무슨 재미로 볼까? 육상, 마라톤, 수영 등 기록을 중시하는 운동 경기의 목표는 단순하다. 결승점에 누가 빨리 도달하느냐다. 순위도 중요하지만 시간 단축이야말로 기록경기가 존재하는 큰 이유다. 불가능하다고 여긴 기록을 단축할 때 인간 승리와 기술 발전의 쾌거라는 감탄이 쏟아진다.
육상 100m 기록은 1912년 미국의 돈 리피콧이 세운 10초 6에서 시작됐다. 기록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2009년 우사인 볼트가 9초 58을 기록한 이후로 깨지지 않고 있다. 100년 동안 1초 02밖에 줄어들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기록 단축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초가 줄어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인류의 체력은 향상되었고, 주법도 달라지고 경기복이나 신발 등 스포츠 기술도 발전했다.
스포츠 전문가들이 예측하기로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신체 조건이 특별한 선수가 나오고 달릴 때 최적의 기상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8초 99까지는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9초 58에서 8초 99로 줄어드는 0.59초 짧은 시간에 수십 년의 드라마가 압축될 터다. 똑같은 구간을 수없이 반복하는 기록경기를 보는 재미는 기술 발전과 도전의 역사를 보는 데서 나온다.
모터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기를 치르면서 해마다 같은 코스를 반복하지만 그때그때 흥미 요소는 달라진다. 예측하기 힘든 선수 사이의 경쟁 양상, 변화무쌍한 날씨, 새로운 차종, 규정 변화, 신생팀의 도전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전 해와는 다른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기술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기록 단축이나 순위를 뒤집기 위해 도입하는 새로운 기술이 극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자동차 시장의 큰 흐름 변화는 모터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신 트렌드는 전기차다. 그동안 모터스포츠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기던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가 모터스포츠 영역에 발을 들인다. 포뮬러 E, 익스트림 E, ETCR 등 전기 모터스포츠가 서서히 영역을 넓혀 간다. 기존 모터스포츠에도 하이브리드 경주차가 투입되는 등 전동화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다카르 랠리는 전동화가 쉽지 않은 모터스포츠다. 2주 동안 달리는 전체 구간 거리가 수천 km에 이르고 스테이지별 거리도 수백km여서 충전하며 달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죽음의 랠리’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주행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험하고 거칠다. 험한 지형을 달릴 때 주행 저항은 엄청나다. 뜨거운 외부 온도도 견뎌야 한다.
규정에 따라 차 무게는 2000kg을 넘겨야 하므로 경량화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 온로드와는 판이한 오프로드 환경에서 갈고 닦은 기술이나 노하우 없이는 참가하기 힘들다. 전기차는 내연기관과 달라서 또 다른 적응력이 필요하다. 섣불리 나서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배터리 전기차로는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디가 올해 다카르 랠리에 사상 최초로 전기 구동계를 얹은 경주차를 앞세워 출전한다. 최초인 만큼 남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아우디는 어떻게 대비했을까? 아우디가 들고나온 해법은 주행거리 확장형 전기 경주차 RS Q e-트론이다. 아우디 상위 고성능 모델을 나타내는 RS, SUV 라인업을 뜻하는 Q, 전기차 모델을 뜻하는 e-트론. 이름 조합만 봐도 대략 어떤 콘셉트일지 짐작이 간다.
RS Q e-트론의 동력원은 모터 제너레이터 유닛(MGU) 세 개와 TFSI 엔진이 조합을 이룬다. MGU는 아우디 스포트에서 개발해 아우디 e-트론 FE07 포뮬러 E 경주차에 사용하는 것을 다카르 랠리에 맞게 수정했다. 두 개는 앞뒤 차축에 배치했다. 나머지 하나는 에너지 컨버터의 일부로 고전압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고효율 TFSI 엔진은 DTM에 사용하는 것이다. 효율 범위인 4500~6000rpm에서 작동하고, 에너지 소비량은 kWh당 200g 미만이다. 에너지 컨버터의 일부로 주행 중에 고전압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사용한다.
배터리 용량은 각 스테이지의 최대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52kWh이고 무게는 대략 370kg이다. 르망이나 포뮬러 E 경주차와 마찬가지로 제동 시 에너지 회수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앞뒤 MGU는 바퀴의 회전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한다. 브레이크는 유압식과 회생 제동 장치를 함께 구성한 지능형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각 요소를 다카르 랠리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성공의 핵심 요소다. 거리, 속도, 지형의 난도, 기타 요소를 고려해 적정 에너지 수준을 유지한다. 에너지 추출과 배터리 충전은 정해진 거리 안에서 항상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4.5초 이내이고, 최고속도는 규정에 따라 시속 170km에 맞췄다.
전기 구동계라는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하는 기본기에도 충실하다. RS Q e-트론의 골격은 튜브 프레임이다. 항공우주 소재로 쓰이는 CrMoV(크롬 몰리브덴 바나듐)을 포함해 내열성을 높인 합금강으로 만든다. 프레임 사이에는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복합 재료로 만든 패널을 설치했다. 패널은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을 기본으로 하고 슈퍼섬유인 자일론으로 보강해 날카로운 물질이 외부에서 파고드는 위험을 차단한다.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를 고전압 시스템에서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구조와 소재는 아우디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기술이다. 튜브형 프레임은 DTM, 강판 섀시는 랠리크로스, CFRP 모노코크는 LMP 스포츠카와 DTM 투어링카와 포뮬러 E 경주차에서 사용해왔다.
섀시 외에 본체에도 기술 노하우를 접목했다. CFRP와 케블라와 복합구조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허니콤 구조로 보강한다. 앞유리는 A4에 쓰이는 열처리한 라미네이트 유리로 긁힘에 강하다. 옆 창문에는 가벼운 폴리카보이네이트를 사용한다. 시야 확보는 물론 먼지 침투를 막아 드라이버가 운전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시트는 CFRP 셸로 만들었는데, DTM이나 LMP에 사용하는 것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발포 인레이와 팽창식 쿠션을 사용해 시트마다 개별적으로 충격을 완전하게 흡수한다.
에너지 컨버터를 갖춘 전기 구동 시스템은 다중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중앙에 자리 잡은 고전압 배터리는 CFRP 구조로 캡슐화했고 일부는 자일론으로 보강했다. 바닥 보호는 매우 복잡하다. 오프로드 스포츠에서 언더보디는 극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노출된다. 아주 높이 점프하고, 돌덩어리가 끊임없이 튀어 오르고, 경사진 굽이길을 쉴 새 없이 돌아나간다.
언더보디 가장 아래쪽에는 알루미늄판을 깔아서 단단한 물체에 긁히는 현상을 방지하고 부분적으로 충격 에너지를 흡수한다. 위에는 에너지 흡수 발포재를 넣어서 충격을 흡수하고 위쪽 샌드위치 구조로 분산한다. CFRP 샌드위치 구조는 에너지 컨버터의 고전압 배터리와 가솔린 탱크를 보호한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은 알루미늄판과 발포재를 거치면서 대부분 흡수된다. 충격이 클 때는 CFRP 샌드위치 구조에서 마저 흡수해 배터리를 보호한다. 삼중으로 보호하는 언더보디의 두께는 54mm이고, 손상이 생기더라도 쉽게 교체할 수 있다.
아우디는 서킷에서 쌓은 노하우를 크로스 컨트리 랠리에 응용한다. 서스펜션의 상하 이동 폭, 부하의 지속 시간, 경주차 질량 등을 따지면 오프로드가 더 험난하지만, 관성력은 오프로드나 서킷이나 비슷하다. 이런 유사한 부분에서 서킷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한다.
고전압 보호에 관해서는 추가도 대책을 마련했다. LMP와 포뮬러 E에 이미 알려진 ISO 모니터는 위험한 고장 전류를 감지한다. 최대 운동 부하가 발생하면 한계치가 넘어갈 때 시스템이 자동으로 꺼지고, 차체의 제어 램프와 음향 신호로 외부에 경고한다. 강을 건널 때를 대비한 시스템 절연 처리와 내장 소화 시스템의 전기 절연 소화약제는 극한 물리적 상황에서 탑승자를 보호한다.
아우디는 콰트로를 앞세워 1980년대 초반 랠리에 혁명을 일으켰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는 하이브리드 경주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포뮬러 E에는 독일 브랜드 최초로 참가했다. 이제는 다카르 랠리에 에너지 컨버터 시스템을 얹고 나간다. 아우디 내부에서도 지금까지 선보인 경주차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한다. 전기차 시대로 가는 길, 아우디 도전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