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선택한 올해의 아우디 원픽 ④]
아우디 RS Q8, 새로운 기함의 조건을 제시하다
밀레니엄과 함께 SUV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흙밭에서 구르던 SUV가 아닌, 말쑥한 도심형 SUV가 주류로 등장했다. SUV가 제시하는 공간은 사람들이 SUV에 열광하는 큰 이유로 작용했다. 공간 효율성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차체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 크게, 더 많이. 전보다 더 나은 걸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브랜드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 도심형 SUV다운 편의장치와 안락함을 대입해 더욱 상품성을 높였다.
고성능 자동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SUV와 고성능은 쉽게 어우러지기 힘들다. 고성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형태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빈틈없는 효율보다는 상반된 두 요소가 결합한 풍요로움에 더 매력을 느꼈다. 더 크고 더 많은 걸 넘어, 더 강력한 것까지 눈길을 돌렸다. 자연스런 확장이자 욕망의 흐름이었다.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가 괴물 같은 SUV를 만드는 시대. 기품 있는 럭셔리 브랜드가 전에 없던 SUV를 내놓는 시대. SUV 전성시대는 기존 통념을 뒤집었다. 이제 중요한 건 전통 문법이 아니다. 새로운 모델이 어떻게 자극하고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는 점이다.
시장이 다채로워진 만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우디 RS Q8은 그 욕구를 충족시킨다. 크면서도 크기만 하지 않다. 전고를 낮춘 대형 SUV로서 독특한 형태를 제시한다. 공간 효율이 중요한 SUV에서 공간을 덜었다. 대신 낮고 넓은 웅장함을 획득했다. 전통 문법보다는 새로운 시도가 중요한 시대다운 콘셉트다. 덕분에 대형 SUV의 듬직함은 유지하면서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RS 배지 단 모델답게 카본과 블랙 장식으로 절제한 점도 절묘했다. 고급스러움이 꼭 화려함으로만 통하지 않는다. 절제했기에 더 집중도를 높이는 전략도 있다. 고단수다. 아우디의 고성능 모델인 S와 RS 모델은 절제하는 스타일로 고유한 멋을 획득해왔다. RS Q8에도 그 효과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덕분에 대형 SUV지만, 고유한 영역을 개척한다. 전통 문법을 비틀어 적용하자 새로운 결과물이 나왔다. RS Q8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유다.
아우디 RS Q8을 특별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고성능이다. 아우디는 RS Q8에 S를 넘어 RS 배지를 부여했다. 아우디 RS 배지는 전고 낮은 세단과 왜건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기함인 A8에도 S만을 허락했다. SUV에 허락하는 배지 역시 S가 끝이었다. 가공할 고성능과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진중한 세단과 전고 높은 SUV에는 S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RS Q8에 RS 배지를 허락한 점은 중요하다. 역시 전통 문법에서 벗어난 전략이다. 이제는 효율과 필요가 아닌 고성능이 곧 럭셔리로서 기능하는 까닭이다. 시대 흐름은 제약보다는 넘치는 풍요에 주목했다. RS Q8은 기함급 SUV로서 각 요소에서 최고를 지향한다.
그 사이 기술이 발전한 영향도 크다. 대형 SUV인데도 고성능을 소화하게 했다. 크기와 형태에 따른 물리적 단점을 상쇄한 결과다. 그러면서 대형 SUV만의 장점도 유지했다. 품이 넓은 RS Q8의 고성능은 마냥 긴장하게만 하지 않는다. 대형 SUV로서 안락함도 제시한다. 컴포트 모드와 스포트 모드 사이에서 품이 넓다. 감당해야 할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서스펜션이 잘 대응한다는 뜻이다. 느긋할 때 긴장시키지 않고 짜릿할 때 허둥대지 않는다. 극과 극을 재빠르게 오가며 두 가지 영역에서 만족스러운 값을 내놓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8초 만에 도달하면서 안락한 거동까지 음미할 수 있다. 그만큼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의 기술력이 발전했다는 뜻이다. 후륜조향시스템은 대형 SUV인데도 민첩하게 움직이게 한다. 즉, 전통 문법에서 단점으로 받아들인 부분을 기술력으로 돌파한 셈이다. RS Q8의 고성능은 단지 출력이 높다는 의미 이상이다. 기준을 확장하고 수준을 높인 증거다. 그 결과물로서 RS Q8의 고성능을 바라보게 한다. 기술적 성취로서 RS Q8의 존재는 의미를 더한다.
RS Q8에 담긴 의미는 단지 의미로만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만족도로 연결된다. 그래야 의미가 더 빛나고 확장할 수 있다. RS Q8을 올해의 아우디 원픽으로 꼽은 이유다. 이런저런 의미를 떠나 탔을 때 만족도가 크니까. 차체는 묵직한 바위 같으면서도 둔하지 않다. 매끈하게 다듬은 거대한 기계에 탑승하는 포만감을 준다. 시트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호령하듯 달릴 시야가 펼쳐진다. 지붕을 깎았기에 휑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폭이 도드라져 다부지다. 큰 자동차를 타는 느낌을 주면서도 헐렁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동을 걸어 V8 트윈터보 엔진이 깨어나면 그동안 쌓인 감흥이 증폭한다. 거대한 차체가 날렵하게 움직일 때면 스포츠카 이상의 포만감에 휩싸인다. 태생부터 달리기에만 집중한 자동차가 잘 달릴 때와는 쾌감이 주는 질감이 다르달까. 더구나 거대한 덩치가 공기를 뭉개며 달리기에 느낄 수 있는 짜릿함도 있다. 고성능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성질까지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시침 뚝 떼고 SUV다운 안락함도 펼쳐놓는다. 커다란 차체만큼이나 변화의 폭이 크다. 이런 감각을 고급 모델다운 질감으로 채운 실내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효용과 재미라는 양 극단을 모두 품은 자동차로서, RS Q8은 아우디에서 정점을 차지한다.
아우디가 RS Q8을 내놓은 이유는 명확하다. 럭셔리 SUV 시장에서 활약할 전략 모델이다. RS 배지까지 부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 넘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야 하는 시장이다. 전략 모델로서 RS Q8이 장착한 무기는 효과적이다. 새로운 흐름에 대응하는 기함으로서 합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의도와 결과가 이렇게 맞아떨어지는데 어찌 올해의 아우디 원픽으로 꼽지 않을 수 있으랴.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