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미엄 전기차 성공의 길 활짝 연 아우디 e-트론
유럽은 여전히 작은 차들이 시장을 주도한다. SUV가 강세라고는 하지만 그 SUV조차 콤팩트한 모델들의 인기가 높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변화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 자체가 보수적이란 의미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이 자리 잡기까지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린다. 이런 특징은 전기차에도 나타난다. 독일을 예로 들어 보자. 쟁쟁한 고급 자동차 회사가 여럿 있는 독일엔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까지 있다. 덩치 크고 고성능 엔진이 들어간 자동차가 잘 팔릴 만한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기 있는 건 작은 차들이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순위를 보면 특성이 드러난다.
▲ 2020년 독일 전기차 판매 순위 (자료=독일연방자동차청)
1위 : 르노 Zoe (30,376대)
2위 : 폭스바겐 e-골프 (17,438대)
3위 : 테슬라 모델 3 (15,202대)
4위 : 폭스바겐 ID.3 (14,493대)
5위 : 현대자동차 코나 EV (14,008대)
6위 : 스마트 포투 (11,544대)
7위 : 폭스바겐 e-UP (10,839대)
8위 : BMW i3 (8,629대)
9위 : 아우디 e-트론 (8,135대)
10위 : 오펠 e-코르사 (6,106대)
다양한 전기차가 TOP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우디 e-트론을 제외하고 모두 작은 차들이다. 경제성을 우선 고려한 소비의 결과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고 보면 e-트론 판매량은 더욱 눈길이 끌릴 수밖에 없다. 경제성과는 거리가 있는, 1억이 넘는 고가의 모델임에도 높은 판매량을 보인 것이다. 직접적인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 2020년 독일 내 고가 전기차 판매 순위 (자료=독일연방자동차청)
1위 : 아우디 e-트론 (8,135대)
2위 : 포르쉐 타이칸 (3,203대)
3위 : 메르세데스 EQC (3,155대)
4위 : 재규어 I-페이스(1,341대)
5위 : 테슬라 모델 S (777대)
6위 : 테슬라 모델 X (714대)
e-트론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 것을 볼 수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유럽 시장의 낯가림(보수적 성향)을 생각하면 까다로운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작지 않은 사이즈에 고가이며 아우디의 첫 순수전기차였지만 불확실성을 극복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유럽 시장 전체로 확대됐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e-트론은 지난해 3분기까지 유럽에서 판매된 전기차들 중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처럼 유럽 역시 콤팩트한 전기차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유일하게 아우디 e-트론만이 고가의 중형 이상 전기차로 10위 안에 포함됐다.
▲ 2020년 1월~9월 유럽 전기차 판매 순위 (자료=카세일즈베이스닷컴)
1위 : 르노 Zoe (63,350대)
2위 : 테슬라 모델 3 (56,168대)
3위 : 폭스바겐 e-골프 (27,126대)
4위 : 현대 코나 EV (26,277대)
5위 : 푸조 e-208 (20,980대)
6위 : 닛산 리프 (20,626대)
7위 : 아우디 e-트론 (19,997대)
8위 : 기아 니로 EV (19,837대)
9위 : BMW i3 (14,915대)
10위 : 폭스바겐 e-UP(13,231대)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24,340대다. 12월까지 포함한다면 e-트론의 유럽 연간 판매량은 2만 5천대를 넘길 것이 확실하다. 1억 전후의 중형 이상, 프리미엄 전기차들 중 유럽 연간 판매량 2만 대를 넘긴 건 아우디 e-트론이 유일하다.
▲ 11월까지 유럽 고가 전기차들 판매량 (자료=카세일즈베이스닷컴)
1위 : 아우디 e-트론 (24,340대)
2위 : 메르세데스 EQC (11,680대)
3위 : 포르쉐 타이칸 (10,308대)
4위 : 재규어 i-페이스 (8,972대)
5위 : 테슬라 모델 X (4,720대)
이는 유럽에서 테슬라 모델 S가 엄청난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었던 때에도 도달하지 못했던 기록이다. (테슬라 모델 S의 유럽 연간 최대 판매량은 2018년 17,386대) 그런 이유로 일각에선 e-트론을 고가 전기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모델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e-트론이 지난해 처음 온전히 한 해 동안 판매된 자동차이기 때문에 이런 성장세가 계속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트론이 상대해야 할 새로운 프리미엄 전기차가 계속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엇갈린 평가 속에서 아우디는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다. e-트론에 이어 e-트론 스포트백을 선보였고 여기에 다시 500마력이 넘는 e-트론 S와 e-트론 S 스포트백까지 라인업에 넣었다. 기존 모델보다 작은 배터리 팩이 장착된 e-트론 50 콰트로까지 포함하면 총 5가지 e-트론이 시장에 나와 있다. 선택의 폭을 넓혀 고객을 더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e-트론 스포트백의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요즘 쿠페형 SUV에 관심이 많은 만큼, e-트론 스포트백은 e-트론 전체 판매 볼륨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현지에선 기대하는 눈치다. 아우토빌트는 쿠페형 SUV에 매력을 못 느끼는 이들에게도 e-트론 스포트백은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 갈 길이 먼 전기 SUV, 특히 고가의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이지만 e-트론은 고성능 자동차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아우디 특유의 디자인과 품질, 그리고 이미 많은 비교 평가를 통해 드러난 안락함과 다양한 첨단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긍정적인 인상을 줬다. 그리고 판매량이 이를 증명했다.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아우디 전기차의 첫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기대 이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정확한 속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e-트론의 성공이 아우디가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더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